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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록달록 그림쟁이 홍시야 [20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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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산그림
  • 등록일 : 2015-06-08
  • 조회수 : 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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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틈엔가 그녀는 얘기를 멈추지 않은 채, 색연필을 들고 책상 위에 펼쳐진 그림 속의 물고기 비늘을 깨알같이 채워넣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있어 그림을 그리는 일은 숨을 쉬는 것과 비슷한 것이로구나, 생각했다. 그녀의 손 끝에서 그림은 술술 흘러나왔다. 의식의 흐름처럼 모호한 형태에서 시작해 자유롭게 방향을 뻗어가는 그림을 보는 사이 내 녹음기는 그녀 특유의 '음-'으로 시작하는 대답들이 가득 찬다. 그녀가 내 질문에 답하듯 그림이 그녀의 질문에 답하는구나. 수많은 드로잉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그녀의 방을 떠올렸다. '많죠. 정말 많아요. 제 동생이 그 드로잉북, 남들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해요. 왕따여서 아무도 놀아주지 않아 혼자 노는 거 너무 티난다고요.' 홍시야는 말하면서 웃는다. 그중의 극히 일부가, 그녀의 활발한 활동의 결과물로 우리 앞에 놓여있다


    홍시야, 라는 독특한 이름은 본명이자 본명이 아니다. 태어날 때 지었던 이름은 아니지만, 이제는 개명절차를 통해 말 그대로 본명이 되었다. '무지개 홍이고, 보일 시 불릴 야. 개명할 때 한자가 꼭 있어야 된다고 해서요. 무지개 빛 다양한 색깔,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림쟁이로 보여졌으면 좋겠고, 불렸으면 좋겠고 그런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고. 그런 의미로 만든 이름이에요.'

    많은 작가들이 필명을 쓰지만 굳이 개명신청까지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이름에 애착이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거창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단다. '그 이름으로 지내다보니까 애착이 생기기도 했죠. 그리고 대부분 다 본명이라고 생각해서, 사실 좀 불편한 일들이 많았어요. 법적으로 써야 되는 계약서 같은 경우 본명이 들어가야하니까, 당연히 이 이름인줄 알고 보냈다가 다시 번복되는 불필요한 일들이 자꾸 생겼죠. 어차피 그림을 계속 그릴 거고, 이 이름으로 지내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요. 제 2의 인생의 시작이라고나 할까요.'



    제2의 인생이라고 한다면, 이름을 바꾸기 훨씬 전에 극적인 방향바꾸기가 있었다. 홍시야는 음악을 했다. 일곱 살이 되기 전에 시작한 피아노를 전공으로 대학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 저를 만났던 분들은 다 제가 음악을 하고 있는 줄 아실 거에요.' 하지만 그녀는 대학입시를 코앞에 두고 피아노를 그만 뒀다. 피아노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이걸 계속 하면 정말 괴로울 것 같았어요. 사실 저는 짜여져 있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때 제가 클래식 쪽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피아노 연주가 너무 좋아서 10년 이상 쳐 왔지만, 너무 답답한 거에요. 정해진 악보대로 그대로 쳐야하잖아요. 어디서 쉬어라, 하면 쉬고. 어디서 강하게, 하면 강하게 하고. 그래서 실용음악 쪽으로 방향을 바꿔볼까, 재즈 쪽으로 해볼까, 하고 봤더니, 음악하시는 분들, 너무 힘든 거에요. 실용음악 하시는 분도 많지 않았고. 자기작업화 하는 분들도 많지 않았고. 다시 고민해보니, 이렇게 했다가는 나중에 음악이 내 인생에서 미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결국 원서 쓰고 준비하던 곡도 있는 상황에서 과감하게 시험을 보지 않았죠. 부모님과 선생님한테는 떨어졌다고 하고. 음악을 그때 포기했죠.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이곳에 오기까지 그녀의 궤적을 짚어보면, '과감함'과 '자신감'이라는 단어가 두둥실 떠오른다. 또는 '무모함'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채 스무살도 되지 않은 홍시야는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결정했다. '단호하게 자르고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사실 전공이라는 건 제 인생에서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그때 고민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고 과감하게 버렸죠.' 오래 준비하던 음악은 접었지만 그녀에게 다른 길이 없는 건 아니었다. 중학교 때 했던 무용은 본인 표현에 따르면 '너무 못했기 때문에' 이제 와 전공으로 삼을 수는 없었지만, 그림은 계속 그려왔다. 그렇지만 그녀의 이 과감한 결단을 단순히 음악에서 그림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저는 전공을 꼭 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술을 하는 사람, 작업을 하는 사람이 머릿속에 있었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미술하면 미술과만 가야 하고 무용하면 무용과만 가야하고 음악하면 음악과만 가야하잖아요. 무용을 해도 음악을 만들 수 있고 음악을 해도 미술을 할 수 있는,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때 당시 대학입시를 준비하다보니 그런 것을 가르쳐주는 학교는 우리나라에 없더라고요.'

    열아홉의 홍시야는 그것을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뭐 굳이 대학을 가야 하나 싶었다. '예술의 모든 것을 종합해서 가르쳐주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자기만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인재를 끌어줄 수 있는 학교가 있으면 참 매력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게 없었죠. 그래서 나중에 그런 학교를 발견하면, 열심히 돈을 벌어서 이십대 후반이나 삼십대 초반에는 유학을 가야겠다 생각했죠. 간혹 얘기를 들어보면 외국에는 그런 학교가 있대요.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크게 걱정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나 입시를 전적으로 포기할 수는 없던 터라, 그녀는 미술학원에 잠시 다녔다. 하지만 그것도 대안이 될 수는 없었다. '갔는데 정말 더 미치겠는 거에요. 내가 아무리 사랑에 빠져도 저 석고상을 여덟시간 열시간씩 하루종일 보고 앉아서 그릴 수는 없잖아요. 게다가 공식을 가르쳐주는 거에요. 전 그렇게 안보이는데 여기서는 몇도를 꺾어야 되고 여기서는 쳐야 되고. 두달은 참았는데 정말 아닌 거에요.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너무 많은데 이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열정을 투자해서 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준비했던 음악도 포기할 정도였는데...그래서 과감하게 학원을 나왔죠. 뭐가 되었든 이건 아니다 싶어 다른 방법으로 미술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 후론 제 그림을 그리다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마다 학원을 찾아가 배웠어요. 문득 수채화가 그리고 싶어지면 화실에 가서 수채화를 배웠고요. 수묵화로 그리고 싶어지면 찾아가 수묵화를 배웠고요. 그랬더니 누군가와 템포를 맞춰야 한다는 거부감도 없고,스트레스도 없이 그림 배우는 것이 너무너무 재미나고 좋더라고요.'

    그리고 대학교 입학을 위해 수능시험을 준비했다. 다행히 수능 점수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마침 조건이 맞았던 대학의 시각디자인과에 들어갔다. 정해진 과정을 어서 해치우고 회사에 들어가 돈을 모아 그 돈으로 여행을 하거나 유학을 가는 자신만의 계획을 진행하고 싶었던 그녀는 학교에 다니기로 결심했으나, 그 커리큘럼이 맞을 리 없었다.“수업은 거의 안 들어갔어요. 도서관에 학생조교로 들어가서, 하루종일 도서관에 있었죠. 책보고, 그림 그리고.”

    도서관에서 그녀는 그때 당시로서는 비싼 돈 주고 사야만 했던 외국서적이나 디자인 관련서적을 일착으로 볼 수 있었다. 커리큘럼에 포함되지 않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녀는 스스로를 '교육'했다.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고 바지런히 그려댔던 그림들. 그 그림들 덕분에 진로도 쉽게 결정이 났다. '2학년 여름방학 때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지만 팬시회사에 지원했어요. 포트폴리오도 없잖아요. 2학년 때 무슨 포트폴리오가 있겠어요. 항상 제가 갖고 다니면서 드로잉을 했었던 드로잉북만 갖고 지원했죠. 그런데 그게 됐어요. 그래서 그 뒤로 학교 안 갔어요.'

    이제 와서는 유학에 대한 마음도 접었다. '시간적으로나 재정적으로 그런 여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냥 긴 여행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일년이든 이년이든, 도시를 돌아가면서 살고 그 안에서 느끼고 그리는 게 진정한 작업이 아닐까 생각해요. 하지만 저 굉장히 충동적이고 계획없는 인간인지라 언제 또 뭔가에 끌리면 날아갈 수도 있고요. 모르겠어요. 어떻게 될지는. 하지만 아직은, 오늘까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 뒤에 다녔던 회사들은 그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당시 디자이너들이 무척 가고싶어했던 회사인 <바이러스헤드>도, 대기업인 도 그녀가 지원한 것은 아니었다. SK의 경우 그녀의 홈페이지를 보고 연락을 해 왔다. 그녀의 홈페이지 또한 평범하지 않았다. 어느 회사에 다녔고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어떤 작업을 했고...그 자신이 얼마나 참여했는지 모호한 작업들을 올려놓는 대신 그녀는 극히 개인적인, 그녀만의 온전한 그림들을 올려놓았다. 그 그림들이 그녀를 말해주었다.

    그녀의 그림은 그녀 자신이다. '누구의 눈에 띄기 위해서 그리지 않아요. 사회적인 트렌드가 이런 그림이니까 이런 그림을 그리고, 포트폴리오니까 포트폴리오에 맞는 그림을 그리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제가 즐거울 수 있는 것. 제가 봤을 때 만족할 수 있는 그림들을, 아무도 내 그림을 봐주지 않더라도 꾸준히 그렸던 것 같아요. 오래전부터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그림의 가치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왔어요.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게 굉장히 싫었고 거부감이 들었죠.' 그러다보니 그녀만의 스타일이 생겨났다. '누군가는 말해요. 우리 다섯 살 조카가 그린 그림 같아. 어린애가 낙서한 것 같아. 하지만 저에게는 한순간에 그 그림들이 생겨난 건 아니에요. 나를 위해서 나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서 계속 계속 그려왔고 쌓였던 거에요. 그게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에요.'

    어떻게 하면 잘 그릴 수 있어요? 이 질문은 홍시야가 메일이든 게시판이든 직접 만나서든 계속해서 받는 질문이다. 그녀는 '그림일기를 그려라'라고 대답해준다. '사실 제 인생 자체가 정규코스를 밟아온 스타일이 아니잖아요. 사람마다 다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데 나처럼 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저는 그림일기를 그리라고 말해줘요. 자기 감정을 살펴라. 자기 기분을 살펴라. 자기가 오늘 뭘 봤는지를 기록하고 기억하고 표현해라. 그게 저에게는 굉장히 컸어요.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고 뭔가에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진짜 일기였죠.' 그녀는 그녀가 진행했던 발상드로잉 워크샵에서도 그림일기의 중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매일매일 그림일기를 그리는 것, 중요해요. 그것이 쌓이다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을 찾고 좋아하는 선을 찾고 좋아하는 얘기를 찾게 돼요. 그런 것들이 쌓여서 자기가 얘기하고 싶은 것을 찾게 돼요. 전시를 하더라도 책을 만들더라도, 중요한건 내가 진짜 이 세상에 하고 싶은 얘기가 뭔가, 뭘 얘기하고 싶은가에요. 무슨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은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그림은 그녀를 말해주지만, 그녀는 그림 안에 갇혀있지 않다. 그녀를 한 마디로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표현할 말도 찾기 어렵고, 한 마디로 표현되기도 싫어한다.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했어요. 나는 뭘까. 지금 생각하면 보여지는 모습이 저인 것 같아요. 일러스트레이터 홍시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연극에서 보면 무대감독이고. 미술 쪽에서 전시하고 작업하면 드로잉작가이고. 사이월드에서 일을 하던 당시에는 저는 그림을 안 그렸어요. 디자인적 기획과 아트디렉터였죠. 삼년정도. 그렇게 보면 또 그런 홍시야죠.' 한계를 긋지않고 전방위적으로 뻗어나가는 일들은 그녀를 한마디로 규정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런 '정체성 규정내리기'는 홍시야가 하는 일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사실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게 저에게는 좀 불편한 단어이기도 했어요. 저를 규정시키는 것 같아서요. 저는 정체성을 규정 안 짓고 여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하니까 그냥 삽화작업하는 작가인가보다, 하는 거에요. 그것보다 다른 작업을 더 많이 하고 다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도요. 제가 첫 개인전을 했을 때 그때 당시만해도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전시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어요. 개인전을 한다니까 출판 쪽에서 '이제 홍시야 일러스트일 안한대. 전시하고 자기 책 내는 일만 한대.'라는 소문이 돈 거에요. 나중에 알았지만 어쨌든 그 때문에 한동안 일러스트 작업 제안이 전혀 없었죠.'

    세상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에 규정을 내려야하는가는 오랫동안 홍시야의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이 편하다.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말도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너무 제한시키는 느낌이 강해서 싫었는데 지금은 좋아요. 저는 책을 되게 좋아해요. 굉장히 매력이 있는 도구잖아요. 책을 보면서 내 그림을 서로 일대일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텍스트에 맞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 그런 것들이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셔도 지금은 좋아요. 그렇게 보는 사람은 그렇게 보는 거고. 다른 측면에서 보면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열어두고 싶어요.'





    그녀가 그리고, 쓰고, 찍은 책은 현재 다섯 권이 나와 있다. <혼자살기>, 북유럽을 여행한 여행에세이인 <서른의 안녕한 여름>, 그리고 세 권의 그림책 <조조의 하루, 걷다>, <한숨의 그릇, 담다>, <노란트럭의 달빛무대, 가다>이다. 사진을 찍는 것은 좋아하지만 글 쓰는 건 그렇게 자신있는 편이 아니다. '글 잘 쓰시는 분들 부럽죠.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글작가가 되고 싶다 할 정도로요. 저는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에디터들이 느끼기에는 제가 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어투가 있대요. 그래서 제 그림에 어울리는 글은 제가 쓰는 게 최선인 것 같다고들 하시더라고요.'

    '그림쟁이 홍시야의 알록달록 싱글스타일'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혼자살기>는 독립생활에 대한 책은 아니다. '사실 거기서 제가 말했던 '혼자살기'라는게, 부모님과 가족과 떨어져 사는 독립된 생활 뿐만 아니라 진짜 자기를 찾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는 것에 포인트를 둔 책이에요. 내용을 보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좋아하는 장소에 가고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발견하고, 표현해 내는 그런 삶이죠. 너무 크고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사소하고 작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 더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자, 관찰을 해보자, 발견을 해보자, 표현해보자 그런 얘기였죠.'

    그려보고 싶은 일러스트는 [어린왕자]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비슷할 것 같기도 한데, 어린왕자가 사실 언제 봐도 참 새로운, 좋은 책이잖아요. 그 책을 저도 가까이 두고 간간이 보는데, 워낙 책이 훌륭하니까 내가 어린왕자를 그리면 어떤 그림책이 나올까 저도 궁금해요. 사실 책이 여러 출판사에서 많이 나와 있지만 어린왕자의 틀이 있어요. 한 사람이 그린 그림은 아닐텐데 비슷하죠. 그래서 내가 어린왕자를 그린다면 나만의 어린왕자를 만들어낼 수 있어 재밌겠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이미지화된 어린왕자의 틀을 깬 그런 작업인 거죠.'


    요즘 홍시야가 매력을 느낀 장르는 무대미술이다. 작년 초, 강량원이 연출한 '극단 동'의 연극 [비밀경찰]의 무대미술을 맡으면서 처음 거대한 극장 배경에 그림을 그리는 경험을 했다. '연극을 위한 미술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미술은 미술로 보여지고 음악은 음악으로, 연기는 연기로 보여질 수 있는 종합예술극의 형태였어요. 미술은 제가 혼자 맡았고 음악은 국악그룹 '불세출'이 맡았죠.' 마침 독특한 아티스트를 찾던 연출자가 홍시야의 작품을 보고 연락을 해 오면서 홍시야는 연극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처음 미팅에서 희곡을 보는데 너무 재밌는 거에요. 재미없었으면 그렇게 땡기지 않았을 것 같은데 너무 재미있어서. 연출님도 제 그림을 워낙 좋아하셨기 때문에 좋은 작업이 나오면 참 재미있겠다. 그 정도? 할께요, 수락을 했는데 스케일이 그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죠.'

    아르코에서 제일 큰 대극장이었다. 쟁반 백 개를 달아라, 할 때만 해도 실감하지 못했던 규모를,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체감했다. 그 그림을 펴놓고 그릴 작업실이 없었다. '보통 건물 삼층 사층 되는 높이에 넓이도 한 두채 정도 되는 스케일의 무대인 거죠. 그러니 그걸 어디서 그리겠어요. 그래서 그걸 다 조각조각 내서 그릴 수 있는 부분들은 그렸지만 그걸 그릴 작업실이 없어서 셋업하는 날 무대에 달아놓고 기계차를 타고 올라가서 작업을 했죠.'

    인연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올해 4월에는 서울연극제에 초청된 <샘플 054씨외 3인>을 작업했다. 같은 팀이었다. 극장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이었는데, 규모는 아르코 예술 대극장보다 더 컸다. '그때 당시는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어요. 너무 힘들죠.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그런데 그게 희열이 있어요. 연극하시는 분들도 사실, 우리나라에서 연극이 돈이 안 되잖아요. 너무 힘들잖아요. 말만 들었는데 정말 가까이서 그들의 삶을 보니까 돈이 벌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 모여서 연극연습을 하고, 그렇게 해서 아르코에서 예술대극장에서 초청이 되어서 연극을 해도 결코 또 그게 돈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정말 미쳐서 폭 빠지지 않으면 결코 즐길 수 없죠. 저도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으니까 이제는 하지 말아야지. 한번의 경험으로 족해, 생각했는데 또 다른 희열이 있는 것 같아요. 전시장에서 그림을 전시하고 책을 발표하고 책에 있는 작업을 하는 것과, 무대 위에서 그 수많은 관객이 한꺼번에 제 작업을 같이 보고 제가 그 옆에서 생생하게 그들의 반응을 볼 수 있는 것은 다른 매력이 있죠.'

    사실 혼자 놀고 혼자 작업하는 것을 즐겨하는 홍시야에게 여러사람들과 같이 작업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녀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이 두 가지 상반된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은둔하는 스타일이고 작업할 때는 고집도 세고 굉장히 예민해져요. 낯도 많이 가리고 자기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하죠. 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또 그런 성향만은 아니니까 대기업에서 3년 동안 일도 할 수 있었던 거겠죠. 연극작업도 사실 공동작업이니까요. 닥치면 한다고 해야 하나요? 굉장히 힘들고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지만 저에게 또 다른 무엇인가를, 더 큰 사고의 틀을 주는 건 좋은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그녀에게 지금 그녀가 운영하고 있는 부암동의 카페이자 복합문화예술공간 <플랫274 : http://www.flat274.com>는 약이자 독이다. 충동적으로 시작했던 카페였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이 공간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나, 이 창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이런 공간에서 작업을 하면 좋겠다, 이런 공간을 좀더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단순하게 시작했죠.' 햇볕 잘 드는 한켠에 유리벽으로 된 작업실과 작은 갤러리를 갖춘 공간은 그렇게 출발했다.

    하지만 은둔하는 스타일의 홍시야에게 오픈스튜디오는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물론 너무너무 좋은 상황들도 있죠. 어떤 분들이 제 그림을 보시는지, 어떤 분들이 제 책을 사는지, 제 그림을 어떤 분들이 좋아하시는지 사실은 잘 모르잖아요. 전시를 하면 간혹 뵙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여기 있다보니까 그런 분들이 멀리서도 찾아오세요. 굉장히 감사하죠. 하지만 제가 작업을 할 때는 예민한 부분이 있잖아요. 정말 집중을 해야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던가, 오늘은 정말 사람 만나고 싶지 않다던가. 그런데 있다보면 무방비 상태에서 사람을 만나야 되는 상황들이 생기더라고요. 처음에는 너무 많이 힘들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됐지?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모든 것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하는 거니까요. 그만큼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일년 반이 넘어가지만 그녀는 '지금도 사실은 적응해 나가는 시기'라고 말한다. 자신이 책임지는 공간을 운영한다는 건 스스로에게도 낯선 성향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이다. 홍시야는 <플랫274>를 운영하면서, '작가로서의 홍시야' 뿐 아니라 '기획자로서의 홍시야'를 발견해나가고 있다. '사이월드에서 일을 할 때, 저는 그림그리는 게 굉장히 싫었어요. 진짜 크리에이티브한 건 기획자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당시 제가 디자인팀에 있기는 했지만 디자이너들의 작업환경을 보니까 기획자들이 기획서를 주면 그걸 받아서 보기좋게 꾸미고 디자인하는 일을 하더라고요. 저는 없는 것을 만들고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을 실현하고 싶었는데, 디자인팀에 있으면 기획자들이 기획한 것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그 뒤에 기획팀으로 가게 되었죠. 그때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없는 서비스를 만드는 게 재밌었어요. 이곳에서도 없는 것을 기획해서 뮤지션을 초대하고 작가들을 초대해서 뭔가 보여줄 수 있는 것,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무엇인가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흥미로워요.'

    친한 친구들은 '갤러리가 있으니까 네 전시나 해'라고 말하곤 한다. 작가면서 왜 다른 작가들 작품을 전시해주는 데 힘을 쓰냐는 타박은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은 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다르다. '홍시야가 운영하는 카페니까, 홍시야의 작업실을 볼 수 있고 그림을 볼 수 있으니까 오시는 분들에게도 다양한 작가를 소개시켜주고 싶어요. 홍시야 뿐만 아니라 더 잘 그리는, 이렇게 훌륭한 작가들이 참 많구나. 하는 걸 보여드리고 싶은 거죠. 이것들을 운영하다보니까 저도 모르는 작가들이 너무 많은 거에요. 너무 훌륭한 작업 하시는 분들도 많고. 그런 것들을 나만 알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한테 소개시켜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음악도 그래요. 작년에는 홍대에서 인디밴드들을 초대해서 공연을 했어요. 우연히 커피 마시러 왔다가 좋은 음악을 듣고 그 친구들 팬이 될 수도 있고, 음악이 너무 좋아서 다른 공연을 찾아가 볼 수도 있고. 그런 연결고리들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게 기획자의 피일까요?'





    <플랫274>는 조금 당겨진 홍시야의 꿈이다. 그밖에도, 홍시야의 꿈은 더 다른 곳으로, 더 넓은 곳으로 뻗어나간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일상적으로 평생을 가져가야 할 작업이니 두말할 것도 없다. 그 위에, 홍시야 스타일의 목록이 덧붙여진다. '십년 뒤에 제 꿈은 가수가 되는 거에요.' 일년에 한 곡씩 만들었던 것이 벌써 세 곡이나 만들어져 있다. 우쿨렐레도 연주하고 피아노도 가끔 친다. 열 곡이 되면 홈 레코딩으로 앨범을 낼 예정이다. '이십년 뒤쯤에는 '부토'를 할까봐요.' 일본의 춤 장르인 '부토'는 사회적 경험과 연륜이 쌓이면 더 아름다운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녀는 많이 놀고 많이 걸어다니고 많이 책을 보고 많이 음악을 듣는다. 남들에게는 소일하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녀에게는 바로 작업의 연장선이다. '저는 그게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중요하죠. 그런 걸 많이 하고 느끼고 나서는 바로 앉아서 그림을 그려요. 사람들은 그 모습만 보고 진짜 작업속도 빠르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그게 아닌거죠. 하루종일 작업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다시 말해, 그녀의 삶은 자체가 작업이다. 그 결과물이 어떤 것이 될지 궁금한 것은 그녀가 '홍시야'이기 때문일까. 무지개빛 작업과 무지개빛 꿈. 모든 경계들을 고무줄 넘듯 폴짝폴짝 넘어가는 그녀의 행방이 어찌될지 나로서는 그저 십년 후를, 또 이십년 후를 기다려볼 밖에 없다.






    Editor _ 박사 ( catwings@gmail.com )


    대학에서 시와 인도철학을 배운 후, 책, 라이프스타일, 고양이, 여행 등 흥미를 끄는 것들을 주제로 다채로운 글쓰기를 하고 있다. 책으로 『 여행자의 로망백서』, 『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 나의 빈칸 책』, 『 비포컵라이즈 뉴욕』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