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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가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의 변신 참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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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임해영
  • 등록일 : 2015-06-06
  • 조회수 : 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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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가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의 변신 참고서 1


    문화전쟁. 이 간단한 단어는 낭만적인 것이 절대 아니다.
    그것은 잔혹무비하며, 패배한 측을 지구에서 아예 말살시켜 버리는 극도로 잔혹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흔히 국가와 민족으로 나누어지는 각 문화권 간의 문화 전쟁에서는 승패가 비교적 명료하여, 중국의 경제와 정치를 정복했지만 문화전쟁에서 패배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진 원 제국이나 유럽의 침략자들에게 말살되다시피한 북중미 인디언들처럼 몇 가지 구체적인 예시를 들 수도 있다.

    대단히 특이한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우리는 굳이 북미 인디언의 음악이나 미술을 탐닉하지 않으며, 대원제국 유목민의 정취를 느끼려 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문화의 패배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국가 간의, 혹은 민족 간의 문화만이 충돌을 일으키고 싸우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같은 문화권 안의 문화와 예술은 자기들끼리도 섞이고 부딪치며 아비규환을 연출하는 가운데 발전한다. 이 경우 그 승패는 비교적 모호하기 때문에, 그리고 대중의 유행이 존재하는 한 패배자가 역전극을 연출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남아있기 때문에 장르와 장르 사이에 벌어지는 이 혈투는 민족문화권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화적 결전에 비교하여 훨씬 나은 편이며 발전의 원동력으로 종종 이용되곤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어떠한 이유들로 인하여 대중에 대한 흑색 선전(프로파간다)이 일어나고, 그에 의하여 대중이 등을 돌림으로서 자체적인 존립 기반을 위협당한 후 나머지 기반마저 박탈당한 경우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전문 용어로 이른바 자뻑이라거나 팀킬이라고 불리우는 경우다.

    그렇게 허약해진 존립기반에 대해 정책적인 제재가 가해지고, 거기에 더하여 이웃 문화권의 비슷한 장르까지 침공해 오면 그 나라의 문화산업 가운데 해당 장르는 바야흐로 치명타를 입고 쓰러져 죽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하나의 장르가 파멸하면 거기만 망하고 끝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도매금으로 비슷한 장르까지 된서리를 맞고 입지가 좁아지며 흔들리게 되는 것이고, 처음의 초시였던 그 '어떤 이유'가 다시 발동하면 이 문화 파괴의 수레바퀴는 다시 돌아가기 마련이다.

    설마 그럴리가? 설마 우리도? 미안하지만 그 설마들이 맞다. 피해자는 대한민국의 만화. 만화시장의 몰락으로 발생한 충격의 여파를 신나게 얻어맞고 있는 도미노 1번타자는 대한민국의 일러스트레이션 계이고, 그 뒤로 게임산업 계열, 청소년들이 즐겨보는 장르문학, 그리고 일부 순수문학 등으로 줄을 서 있는 상황이다.

    예술을 하기 위해선 다음의 세 가지가 반드시 필수적이다.
    하나는 예술에 흥미를 가져주는 관객. 또 하나는 예술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술 활동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경제적 기반이다.
    이것들을 모두 잃은 예술은 사멸을 시작한다.


    - 파리 8대학 전임교수 쟝 루이 샤즐라(Jean-Louis Chazelas)


    언제부터인가 만화가 커지기 시작했었다. 보물섬을 중심으로 소년소녀 만화잡지들이 창간되기 시작했고, 만화광장이라는 잡지의 창간을 필두로 성인만화도 일어섰다. 그렇게 대한민국 만화의 길지 못했던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길지 못했던 이유는, 유례없는 폭풍이 덮쳐왔을때 그것을 버텨낼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방어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름지기 모든 폭풍에는 전조현상이 있는 법.
    어느날 갑자기 잠에서 깨어보니 만화 시장 자체가 박살난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만 해도 목에 빨간 보자기를 두르고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녀석을 우리는 바보라고 불렀지만, 아무도 영화 속의 슈퍼맨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만화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책임소재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십자가를 만화가 진 만화에 대한, 이른바 관객층의 박탈.

    확인한 바에 따르면 최초의 폭행은 1971년 발생했다.


    이후 만화책들은 매년 어린이날마다 분서갱유되어
    사회를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훈훈한 장르가 되었다

    전국 어린이만화 대본업자들의 모임인 한국아동도서보급협회(회장 정진)는 29일 오전 10시 서울 남산야외음악당에서 회원 및 여성단체 대표 등 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어린이 악서 추방대회'를 갖고 저질만화작가 악덕만화출판사에 대한 화형식과 함께 불량만화 5백여권을 태웠다.

    - 1971년 6월29일 화요일 7면



    30년이 흘러 충분히 대중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을 때, 즉 만화에서 충분히 관객의 존재를 앗아갔을 무렵 두번째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1992년에서 1996년 사이에 청소년 사이에 유행처럼 번졌던 일진회라는 조직은 제 아무리 뭐라고 좋지 않은 꼬투리를 가져다 붙여봐야 실상 법안 입안자의 표현대로 '사리판단이 부족한 청소년들의 행위'다. 즉 이는 어린아이들이 흔히 만드는 지구방위대 수준의 그것이거나 그 연장선이라고 보고 거기서부터 판단을 시작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분서갱유 시즌 2.



    캠퍼스 블루스 12권 표지



    전국적인 유행이 되었던 일진회의 조직책이자 배후의 원흉은 바로 만화가 되었는데, 이는 빨간 보자기를 두르고 뛰어내린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정도의 방어력을 가지고 있던 영화에 비해 학교 폭력의 책임을 지울 수 밖에 없었던 대상으로서의 만화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일차적 동기에 대한 그럴듯한 가설
    보수적인 어르신들치고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로 근대적 만화의 태동은 정권 비판적인 시사만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샹플뢰리(프랑스의 작가 : 1828-1889)는 자신의 저서에 '만화는 평소에는 고양이처럼 잠들어 있지만, 아무리 작은 정치적 동요라도 나타날 경우 잠에서 깨어난다'고 적었다.

    따라서 정치적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는 한국 만화는 그 태동기였던 조선총독부 시절부터 이후 들어선 모든 정권을 막론하고 눈엣가시이지 않은 때가 없었다. 소위 '지배층'들에게는 만화를 탄압하고 싶었던 분명한 동기가 있었는데, 그건 지금도 전혀 변치 않은 사실 중 하나이다.

    아. 흉작이 들면 추장을 제물로 바쳤고, 질병이 돌면 마녀를 사냥했듯이 대중들은 언제나 사회에 변화가 일 경우 그에 대한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는 잔혹한 사실도 하나 더 추가해 두겠다.

    소개하는 작품은 비바 블루스라는 정품이 나오기 이전 점프 코믹스라는 회사명을 달고 나왔던 해적판이다. 800원의 파격적 가격에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한국 건전만화 연구회의 심사필을 달고 서점에 배포되어 나왔던 찌라시 수준의 만화책이었지만 적어도 이 해적판이 나오던 시절은 만화책은 사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사회에 깔려 있었다.

    당시는 비록 일본해적판이긴 했지만 다이나믹 콩콩코믹스가 프라레슬러 대장군, 권법소년 시리즈로 지탱해 왔던 서점용 만화책 시장이 있었고 국내 출판사에서 국내작가의 작품과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등장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가시적인 최초의 공격은 청소년을 인질로 삼아 이루어졌다.
    지금도 각 포탈 사이트에서 [청소년보호법 만화]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무수한 게시글을 볼 수 있는데, 만화가들이 이 법안에 사력을 다해 반대한 것은 그들이 청소년의 바른 성장을 증오하는 사악한 악마의 하수인이어서가 아니라 이 법안이 사전심의를 흉기로 삼아 만화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억압했기 때문이다.



    제보자는 당시 시위하던 만화가 A씨

    심지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있는 장면조차 우리는 그릴 수가 없었다.
    그것이 성기를 만지는 행위라는 심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1997년 여름, 청소년 보호법의 비행청소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청소년의 가방에서 캠퍼스 블루스라는 일본 만화책이 나온 사건은 말 그대로 광풍으로 돌변하여 만화계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모든 외국문화에는 호기심과 거부감이라는 양면이 존재한다. 늘 보아오던 우리 것이 아니라 눈에 설은 것에 대한 거부감이란 본질적으로 공포심에서 기인하는데, 문화 방어적인 입장에서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상대에 대한 적개심으로 억누를 수 있을 경우 거침없이 사용하는 전가의 보도이기도 하다.

    마침 대상은 그렇지 않아도 감정 많았던 나라, 일본의 만화였기에 일본 성인만화에 대한 소개 몇 번으로 인해 자연스레 만화 자체에 대한 전 국민적 거부감으로 전이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중이 만화산업 자체에 등을 돌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어이없을 정도의 탄압이 닥쳐오면서 나름 좀 이름 날린다는 여성단체에서부터 아파트 부녀회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친 분서갱유가 시작된 거다. 만화책 불사르는 축제일처럼 각인되어 있던 어린이날이 일 년 내내 지속되게 되었는데, 그건 이미 만화가 일진회 식의 말로 표현하자면 '찍혀'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였다.

    이게 여기서 끝났으면 의례적으로 닥쳐오는 고난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뒤이어 닥쳐온 거대한 폭탄은 이것 역시 말 그대로 한낱 전조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모든 예술은 일종의 상거래이다. 그것은 시장을 필요로 한다. - 존 호이어 업다이크

    1997년에서 1998년 사이에 닥쳐온 그 거센 가난의 폭풍을 우리는 IMF라고 부른다. 기업이 넘어지면서 실업자가 넘쳐나기 시작하자 정부는 실업자 수습 대책을 세우느라 고심하다가 전국구적 창업아이템으로서 대여점법을 입안하고 통과시켰다. 그리고 이것이 원자분열을 일으키며 출판시장과 만화시장, 즉 문화의 기반토양을 아예 초토화시켜 버렸다.



    대여점 행사 홍보 플랫카드



    기실 만화는 이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만화란 비록 포르노와 더불어 사회악의 양대 축 취급을 당하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서점용 판매만화시장이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작품의 질로서 스스로를 평가받을 수 있는 토양이 있긴 있었다.

    열혈강호의 양재현과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의 이명진이 백만 부의 판매부수를 넘어섰던 시절이었고, 엄청난 필력을 지닌 중견작가들과 만화 작가를 꿈꾸는 청소년이 넘쳐나던 1997년. 말 그대로 만화의 르네상스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던 거다.

    그러나 대여점법은 바로 그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토대, 즉 시장에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만들어 버렸다. 아무리 열심히 그려도 대여점의 개수만큼만 판매가 되게 되었던 거다. 당시 전국에 존재하던 도서대여점의 수는 이만여개. 도서대여점마다 두 질씩 구비한다 쳐도 사실상 사만권을 팔면 인세 끝이 되어버렸고, 만화를 그려 백만 부의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건물을 구입했다던 선배작가의 성공신화는 넘어설 수 없는 전설로 남아버렸다.

    그러나 상대는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IMF.
    당연히 대여점을 창업한 주인아저씨도, 책을 빌려보는 대중도 가벼운 주머니를 가질 수밖에 없다. 가벼워진 국민의 주머니는 대중들에게 선택적인 대여만을 강요했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먹고 살기도 빠듯했던 주인아저씨들 역시 '팔리는 만화책'만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었다.
    - 그리고 이는 이름난 작가들을 제외한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을 사실상 잠가버린 결과가 되었다.

    뒤늦게 만화가들이 시위를 하며 도서대여점법을 막아서려 했지만 이미 대중은 불량만화 = 만화의 공식을 머리에 박아 넣고 있었고, 경제 살리기와 창업 아이템 열망에 반대하는 문화 지키기의 요구는 현실성을 결여한 철없는 칭얼거림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아도 침몰해 가는 대한민국 만화에 마지막으로 가해진 확인사살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는데, 그 역할은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정부차원에서 지원을 받아 국책사업으로 성장했던 인터넷망이 버젓이, 그리고 아주 확실하게 수행해 주었다. 바로 정보공유의 기치 아래 자행되었던 스캔본의 불법 다운로드다.

    스캔본의 만연은 그렇잖아도 단말마의 숨을 몰아쉬던 만화에 대한 인식 자체를 아예 무료 매체로 몰아넣어 버렸고, 그럼으로서 대한민국의 만화는 그 재기에 대한 희망조차 깡그리 말살당하고 말았다.




    [열혈강호]의 스캔본

    돈주고 보면 바보가 되는 불량 무료매체의 주홍글씨는
    양재현 / 전국진의 열혈강호도 피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만화를 돈주고 사서 보는 사람들은 좋은 말로 오덕후, 곧장 말해 바보가 되었다. 대한민국 만화문화는 그나마 남아있던 관객을 완전히 빼앗겨 버린 셈이 되었고 그 파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 만화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 즉 만화방이 아니라 만화를 그려 보여줄 수 있는 매체들로 고스란히 전이되어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켰다.

    아무도 만화를 돈 내고 사서 보지 않는 상황이 되자 르네상스, 세븐틴 등 만화 잡지사는 치명타를 입으며 폐간/정간되었고, 작품을 그려도 대중들에게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인 잡지마저 잃어버린 만화가들은 존재 근거의 모든 것. 즉 관객, 경제적 기반인 시장, 그리고 공간인 잡지를 잃고 일시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잔혹한 격침의 폐허는 현재까지 남아 이어지고 있으며, 사실상 양재현과 이명진 이후 전통적 의미의 만화가는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기대하던 몇몇 작가는 미국으로 무대를 바꾸어 이동했고, 신 암행어사는 한국인이 하회탈을 그렸을 뿐 일본만화나 마찬가지.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고 늙으신 부모님을 공양해야 하는 짐을 진 상황에서 닥쳐오는 가난을 버티지 못한 작가들, 만화계의 난민들은 인터넷의 무료 웹툰(무료라지만 사실상 상위 몇%에게 원고료는 있긴 하다)과 애니메이션, 게임 기획이나 일러스트-삽화 계열로 이동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가장 많이 이동한 곳 중 하나는 바로 일러스트레이션 계열이다.



    만화가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의 변신 참고서 2


    중세 시대, 아틀리에의 주인들은 흔히 거장(巨匠: maestro)으로 불리웠다. 피렌체의 거장 거시기, 프로방스의 마에스트로 머시기 식으로 불리는 식이다. 거장, 거장이라... 뭔가 대단해 보이며, 흠모의 열정마저 일으키기 딱 알맞다. 하지만 이는 알고 보면 사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온전히 실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세 미술의 거장, 오늘날의 석사와 비견되는 마에스트로의 칭호는 미술계에 거대한 족적을 남겨서 붙는 것이라기보다는 사실 직인 조합에 등록하고 독립적인 공방을 연 화가에게 붙는 일종의 직급이었다.


    중세 길드의 컨퍼런스이러한 회의를 통하여 거장의 자격을 심사했다



    당시는 아주 어려서부터 도제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수습을 끝내는 나이도 빠를 수 있었다. 시쳇말로 주문을 수주할 수 있는 마케팅 능력만 있으면 어지간한 젊은이라도 얼마든지 빵빵한 예술가들을 거느린 거장이 될 수도 있었다는 거다.

    - 반면에 음악은 좀 다르다. 거기서 말하는 거장은 당대를 대표할 수 있는 음악가를 말하는 것으로, 말 그대로 거대한 족적을 남긴 예술가들이다. 그래서 시기를 대표하는 거장이 존재할 수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바로크의 거장 헨델이라거나 고전파의 거장 베토벤 같은 식이다.

    이런 CEO 거장이 나서서 각 도시를 순회하며 성당화, 제단화, 직물조합원들의 초상화, 궁성 장식화와 왕족의 무덤설계 등 주문을 받아오면 돈을 받고 고용된 받는 예술가들은 작품에 달라붙어 벌떼처럼 그림을 그려 완성시키는 것이 당시의 상식이었다.

    실제로 유명한 스타급 거장들이 평생에 걸쳐 남긴 특대형 사이즈의 작품 갯수는 족히 수천 점, 많게는 수만 점에 이르는 것이 보통인데, 이는 그러한 아틀리에 시스템이 아니면 인간으로서 도저히 수행할 수 없는 숫자의 작품들이다.

    세월이 흘러 르네상스가 물러가고 인상주의가 도래하면서 자본주의가 등장하자 한동안 회화에서는 이러한 아틀리에 시스템. 즉 단체 공방 시스템이 사라지는가 싶었는데 약간의 시차를 두고 만화계에서 부활했다.

    만화에 이러한 시스템이 안착했던 것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다. 일단 만화는 호흡이 빠르다. 일주일에 열대여섯 페이지를 연재하려 든다 해도 작가 한 명의 힘으로는 구도와 말풍선 레이아웃, 스케치와펜 터치, 배경묘사와 스크린톤 작업까지 끝내어 독자가 원하는 수준의 퀄리티를 갖추는데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스레 이 공방 시스템은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보조적 위치의 스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현대만화에 이어져 부활할 수 밖에 없었는데, 거기에 더하여 도제식 교육 시스템까지 안착하자 비로소 문하생(門下生)제도가 생겨났다.

    누구는 순정만화가 A의 화실 출신으로 그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B를 거의 다 그렸네, 누구는 액션 만화가 C작가의 화실 출신으로 그 작가 작품의 모든 배경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이 없네..하는 것이 바로 이 케이스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여 거장의 위치까지 발돋움할 수 있다는 꿈을 키워나가며 이름 없는 기계 속 스프링의 역할을 자발적으로 감수했지만, 결국 이들 역시 지진처럼 발생했던 만화계의 붕괴 속에서는 속절없는 실향민이 되어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만화계를 떠나 비슷한 장르의 신천지를 향해 대이동을 시작했고 비교적 만화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그림 체계를 환영하는 장르에 정착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교과서 - 학습만화시장웹툰, 게임 일러스트나 기획, 그리고 스토리작가의 경우 무협-판타지 계통의 장르문학 시장이다.


    *


    전직 문하생들이 일러스트레이션 계열로 이주했을 때 그들은 그냥 몸만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공방의 도제 시스템 또한 고스란히 가지고 이주해 왔다. 하지만 거장이자 스승으로 삼을 정도의 만화가는 데려오지 못했는데, 이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들을 지도하는 거장 급의 만화가라면 그래도 알아주는 스타 작가에 속하는 축이고, 저러한 만화의 괴멸 속에서도 살아남아 일본만화가들과도 경쟁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러한들 어쩌리오. 아는 것은 오로지 이 시스템뿐인 것을.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거장을 세웠다. 이제 그들의 거장은 돌아다니면서 그림주문을 수주해 오는 역할만을 맡는다. 도제 시스템에서 CEO 역할까지 맡던 스승이 사라지고 마케팅 담당의 사장만이 남은 것이다. 하지만 그 나머지 역할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던 대로 우루루 달려들어 그림을 그릴 뿐이다.

    단체작업의 경우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이들은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심하게 말해서 밥 한 공기 먹을 시간이 지나면 일럿트 한 컷이 나오는데, 이는 일정 수준 이상의 문화적 안목을 가진 대상을 상대로는 감히 명함을 내밀지 못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제법 봐 줄만한 수준을 가진 그림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돈을 벌어 수익을 배분한다. 이것이 대략 백만원에서 삼백만원 사이. 아싸 좋구나~♬ 팍팍한 세상이지만 이제 좀 살 만해 졌다.


    *


    하지만 진짜 만족하는가?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지 못한 채 착취를 당하는 것에 불과한데도?

    만화는 하나의 줄거리를 가지고 스승이자 리더인 사람을 중심삼아 팀으로서 화합하여 하모니를 이루고, 작품 전체를 긴 호흡으로 관통하는 메시지들을 나타냄으로서 총체적인 카타르시스를 완성하는 방식의 예술 장르이다. 펜 터치 한 토막, 그림 한 컷 한 컷의 중요성만큼이나 스토리와 연출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만화가의 창조성이란 한 컷에 국한되기 보다는 전 작품을 긴 호흡으로 장악하며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입력에 더 큰 주안점을 둘 수밖에 없는데 이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만화같이 어마어마한 분량을 소화해야 하는 수작업의 시장에서는 공동작업의 방식이 아니라면 사실상 제작은 인고의 시일과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

    수많은 작가들이 이 방식에서도 얼마든지 공동의 가치를 창출하여 그것을 합산해 내는 감동을 조율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왔다. 따라서 일러스트레이션에서도 이러한 점이 부각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에는 반드시 필요한 하나의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문하생, 혹은 공방구성원의 독립 가능성 여부다. 그리고 여기서 일러스트 매니지먼트 회사와 공방 시스템의 차별이 갈라진다.


    일러스트 매니지먼트 회사가 수행하는역할 :

    상당수의 일러스트 매니지먼트 회사들은 이미 나름의 학원 기능을 수행하며, 마찬가지로 학원들은 나름의 경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자구책으로서 일러스트 매니지먼트 회사의 역할을 병행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구성원의 그림 발전을 가로막지 않으며, 심지어는 정기적으로 구성원의 그림 전시회를 통해 출판사 편집자들에게 구성원 개인을 소개하고 프리랜서로서의 길을 열어주려 노력한다.

    그들 매니지먼트 회사의 대표 역시 일을 의뢰받아 매니지먼트 회사의 구성원들에게 갈라주지만, 적어도 ‘구성원 개개인의 1차,2차 저작권과 명성을 확실히 보장하고 존중’해준다면, 즉 '독립이 가능한 수준까지 그들을 보살펴 줄 요람 같은 존재'로서 기능하고 있다면 그들이 기존의 상업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논리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반면에 만화계에서 딸려온 낙후된 공방 시스템은 개인을 삭제한다. 거장(혹은 단체)의 이름으로 수주를 받아 들어온 일거리를 처리한 후 단체의 이름으로 판매한다. 1차던 2차던 저작권은 오리무중이 되고, 공방의 사장으로서는 독립적인 작업을 수행했던 구성원에게 월급 댓 푼 집어준 후 입을 씻기면 그만. 누구도 그가 무슨 그림을 그렸는지 알지 못하고, 해당 작업의 2차 저작권은 간데없이 사라진다.

    해당 계열에서 이름난 거장의 존재는 단지 스킬 트레이닝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자기 공방 구성원, 만화계에서의 문하생 독립까지 지원하던 스승의 존재는 이렇게 계열 이동의 충격 속에서 증발해 버렸고, 울며 겨자 먹기로 일러스트레이션에 뛰어든 그들에게 남은 것은 이런 모습 뿐이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일을 시키는 것만이 착취가 아니다.
    성장 가능성을 거세한 후 일을 시키는 것도 착취라 부른다.

    그런데 만화시장에서는 벌어지지 않았던 이런 일이 숱한 상업예술 장르 가운데 고도의 집중력으로 스스로의 내부를 탐색하는 예술, 즉 순수미술에 가장 유사한 장르인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이라니.

    그래서 나는 아쉽다. 무진장 아쉽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깝고도 아쉬운 적은 처음이다.

    저런 단체의 구성원,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사 하나, 용수철 하나에 해당하는 인원 한명 한명이 가지는 잠재력과 재능이 아깝기에 그러한 것이다.

    그들은 기존 일러스트레이터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 갖추지 못한 능력, 즉 소묘력를 기본기로 장착한 초고급 인력들이다. 어찌 아깝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왜 자신의 놀라운 가치를 드러내지 않고 그렇게 나사 한 개만큼의 역할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는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붙잡고 언제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느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그들의 대답은 동일하다. 당연한 것에 대한 질문을 들은 사람처럼 어색한 미소를 띄며 하는 말들은 기가 막힐 정도로 동일하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렸을 때부터라고.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진정으로 수공예 머신 취급에 만족하며 살 수 있는지.




    하긴 이것도 수동은 수동인 셈이다




    만화가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의 변신 참고서 3


    상당수의 만화가들이 일러스트레이션 세계로 이주해 온 후 학습지 다음 일거리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그림이 여기서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는, 다소 이해하기가 어려운 성적표이기 쉽다. 어? 여긴 다르네?

    학습만화를 그릴 때와 똑같이 붓질하고, 똑같이 타블렛을 사용하는데 다르다. 관객들의 반응이 다르고, 거기서 이어지는 출판사 편집자들의 반응이 다르다. 학습지 시장에서 당장 주린 배를 채운 건 좋은데, 삽화시장이나 포스터, 사보 등 또 다른 일거리를 해보고 싶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화폭을 메꾸어 나가는 것은 똑같은데, 데생도 엉성해 보이는 이 사람들은 왜 환영을 받을 수 있고 비례와 균형, 시선집중도 완벽한 자신의 그림은 왜 찬밥 취급을 당하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느 게임회사 실무 기획자와의 인터뷰(발췌)



    상당기간 게임 업계에서 종사해 온 이 기획자와의 대화 가운데 해당부분은 두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하나는 게임 일러스트 쪽으로 진출한 만화가들의 현주소. 그리고 또 하나는 그들 같은 고급 인력이 당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 기획자가 이 두 가지 문제를 함께 이야기한 이유는 이것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제라서이고, 내가 그것을 따로 언급하는 이유는 이것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진출한 만화가들이 겪는 문제점을 대단히 정확히 짚었기 때문이라서 이다. 저 말의 구구절절한 사족을 떼놓고 간단하게 줄여보자.

    소묘를 잘해도 그림체가 독특하지 않으면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는 대우를 받는다

    독특하지 않다는 표현에 우리가 말할 문제의 핵심이 있다.

    하지만 만화가치고 독특한 그림체에 고심하지 않았던 사람 거의 없으며, 실제로 많은 만화가는 나름의 독특한 그림체를 가지고 있다. 그럼 뭘 말하는 걸까. 혹시 더 독특한 것? 그렇다면 만화계에서 신물나게 노력하던 대로 더 연습하면 되겠지!

    분명히 학습지를 통한 일러스트레이션 진입시장의 장벽은 낮았기 때문에, 미처 뭔가 핵심적인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한 만화가들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무작정 결국 자신이 가장 중시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 즉 소묘의 그럴듯한 변형을 위한 노력만 하려 들기 쉽다.

    돋보여야 하는데... 어떻게 해서든 독특해야 하는데...!!

    그렇게 만화시장에서부터 그들의 머리를 고문해 온 이 주문이 다시 되뇌어지기 시작하면 점점 마음의 제약이 다가오고, 스트레스가 쌓이며 조급해 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조급이 다시 스트레스를 양산하게 되어 그림에 제약을 가져오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의외로 정답은 가까운 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주변부터 찾아 보자.

    만화가들이 일러스트레이션 계에 진출한 다음 가장 혹하는 사탕발림 중 하나가 바로 칭호다. 단 한 컷이라도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작가의 경우 출판업자나 편집자와 전화통화를 할 경우 듣게 되는 그 칭호, '작가님'.

    무려 작가란다. 작가. 만화계에서는 최소한 단행본 한 권, 혹은 연재 하나를 잡아야만 들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그 칭호. 문하생 시절에는 너무나도 머나먼 것처럼 느껴졌든 그 칭호가 일러스트레이션 계에서는 한 컷만 그려도, 아니 일거리 하나만 잡아도 마치 관습처럼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미안하지만 그건 관습 맞다. 편집자나 출판관계자야 작가에게 작가 칭호를 쓰는 것이 관습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그 당연한 것이 전직 만화가들이나 전직 문하생이었던 사람들에게는 그게 아니다. XX씨와 XX 작가님은 당연히 그에 따라붙는 어미가 달라지고, 충분히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목과 어깨에 힘을 넣어준다. 하지만 이게 그냥 출판업자들의 단순한 사탕발림일까? 습관이라서?



    학습만화 Page(2005.09) : 배성환



    물론 아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한 컷만 제대로 그려낼 수 있어도 작가라 불리움이 모자람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번이라도 자신을 탐색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일러스트레이션 계에서 충분히 작가가 될 자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작가의 개념이란 중세의 거장이나 만화에서 말하는 작가의 개념과는 약간 달라 후배들에게 하나의 심리적 멘토가 될 수 있을 뿐 기능적인 소묘 스킬이나 채색 요령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일러스트레이션은 근본적으로 정확하게, 혹은 특이하게 그려내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곳이 아니다. 슬램덩크의 작가 다케히코 이노우에나 아키라의 작가 오토모 가츠히로가 만화가로서는 초일류일지 몰라도 일러스트레이터로서는 그리 뛰어나다고 볼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들의 네임 밸류는 그 자체로 충분한 상업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특급다운 명성에 걸맞게 그들의 캐릭터가 아닌 일러스트를 일러스트레이션 전시장의 초일류 일러스트레이터 작품 옆에 전시하고 나면 그것이 어떻게 보일까.

    일러스트는 단 한 컷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예술이다. 그 한 컷 한 컷에 그 동안 느껴온 모든 기승전결을 압축하고, 굴곡진 삶의 과거, 현재와 장래의 희망을 나타내는 스타일 아트다.

    한 컷의 그림에 여태껏 보고 겪어 온 모든 것을 압축하여 표현함으로서 타인을 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감시키며, 그 공감을 통하여 자신이 느껴온 무언가를 드러내어 나누어 줄 수 있는 능력이자, 그것을 광고주의 요구와 결부시켜 목적을 수행하는 상업 예술이다.

    이러한 자리에 잘 습득된 소묘나 정확한 분할, 간결하고도 특이한 터치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속칭 '잘 그린' 아름다움 같은 것들은 만화에 비해 그 필수성이 반감되어 버린다.

    자신을 열어 보이고 그러함으로서 그림에 삽입한 느낌만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일러스트레이션이다. 이것이 바로 그림의 소묘 비례가 틀리고 어딘가 어린 아이가 그린 것처럼 미숙해 보이더라도 그것들이 각광받는 이유이며, 똑같은 사람이란 있을 수 없기에 각 작가마다의 독특한 그림체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대중은 그들의 기능을, 즉 소묘적인 레벨이나 터치 노가다에 감동받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림에 담은 삶의 모습을, 그리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인간적인 감동을 사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투자한 노가다의 시간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직시하며 얻어낸 그들의 잔혹할 정도로 뜨거웠던 노고를 인간적으로 동감하는 것이다.



    외뿔삽화 발췌 : 이외수




    그냥 봐도 뭔가 있어보이는 특급의 일러스트레이션이다. 그렇지만 이외수 작가나 천상병 시인은 소묘를 잘 해서 삽화를 그린게 결코 아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들은 뼈를 깎는 인고 속에서 자신의 내부를 탐색하여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근원을 찾아나갔기에 만인의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는 스토리의 무난한 연속을 위한 정확하고도 독특한 데생이나 실감나는 시각화, 가열찬 액션이 그리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딱히 설명할 말이 애매한 감성의 세계를 탐닉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소묘의 정확성같은 기능적 기교에 대한 중요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터에게 필수적인 기본 요소는 소묘나 인체비례, 해부학 지식 따위가 아니라 보는 이의 심령을 공감시킬 수 있는 정신적인 요소다.

    소묘의 중요성을 내세우며 수단으로서의 기술에 집착하는 순간 그들은 이미 그 정신적인 공감을 단 한 컷에 가지기 위해 오랜 시간 자신 속을 걸어온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밀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는 이렇게 다르다. 기본적으로 소묘를 바라보는 가치가 다른 것이다.

    이들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소묘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보다 더 명확하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배우는 수단. 따라서 자신을 충분히 잘 드러낼 수 있게 된다면, 극단적으로 말할 경우 소묘와 비례 맞추기의 기술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게임계 기획자가 말하는 일반인 플러스 쬐끔 알파의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다.

    그냥 쓸모가 없어지면 차라리 다행. 자신을 가두는 하나의 굴레로서 기능하기 쉽기 때문에, 아예 그것을 부수어 지워버려야 할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러스트레이터로 변신하려는 많은 만화가들 가운데 만화계에서조차 특이한 무엇을 창출하기 위해 기존에 그려오던 스타일을 부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종종 그것을 부수고, 잊기를 결심하곤 한다.



    붉은 벽 앞의 소녀(2009.05.25) : 배성환



    많은 만화가 출신 일러스트레이터의 기본은 바로 소묘였고, 지금도 소묘이며, 앞으로도 소묘일 것이다. 국민학교 때부터, 혹은 초등학교 때부터 공책에 끄적거리던 로봇의 모습이 틀이 잡히고, 경쟁자를 만나 누가 더 잘 그리는가에 대한 내기를 하면서 비례를 갖추고 발전하기 쉽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를 거기 맞추어 단련해 왔기에 많은 만화가들이 일러스트레이터로의 변신을 꾀하면서 스스로의 그림체 스타일을 변화시킨다 하더라도 기본을 잊지 않으려 든다. 목숨과도 같았던 소묘를 버리지 않고 단지 변신을 꾀할 뿐, 그것에서 탈피한다거나 부수어 깨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유를 캐물으면 그들은 말한다.

    ' 나는 만화가니까! '

    이쯤되면 이건 일러스트레이터로의 변신이 아니라 변장이라고 할 수 있다.



    더미런 : 배성환



    이 작가는 배성환이다. 그는 만화가였고, 만화가라면 누구나 겪는 환멸을 고스란히 겪어온 후 지금은 일러스트레이션 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제 일러스트레이터일까? 아니면 만화가일까?

    그 자신에게 물어보면 아마 'XX가 되고 싶다'는 말은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젠 XX라고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말은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도 아리송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이제 한 사람의 '일러스트레이터'다. 만화가로서 일러스트레이션 계통에 합류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중 한 가지. 바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서 틀을 부수고 변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빨간 스쿨버스 (2009.06.18) : 배성환





    만화가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의 변신 참고서 4


    예술가의 헝그리 정신이란 점심을 굶은 상태에서 배가 찢어지게 고프기 시작하는 오후 무렵에 가장 예술활동이 잘 진행된다는 생태의학적, 혹은 심리학적 증상이 아니라 비유적인 표현이다.

    링 위에서보다 링 아래에서 더 많이 얻어맞았다던 전설적인 헝그리 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실제로 흠씬 두들겨 맞은 다음 링에 오른 것일 리가 없고,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외쳤던 거스 히딩크 감독의 경우도 하루 끼니를 한 끼만 먹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들의 배고픔이란 지상의 목표에 굶주렸던 절박한 심정을 나타낸 것이다.

    승리에 굶주렸던 2002년 월드컵 한국 대표팀은 끝내 4강에 오르는 성과를 얻었는데, 이로써 승리의 맛을 보여주어 대한민국 국민에게 '승리에 굶주릴 줄 아는 법'을 중독시켜 버릴 수 있었다. 반면 축구를 스포츠로서 즐긴다는 일본 대표팀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들의 투혼과 투지는 아예 실종된 상태로, 헝그리 정신과는 백만 광년 이상의 거리가 떨어져 있다.

    이는 실제 경기의 결과로도 그대로 드러났는데, 2010년 월드컵 직전의 한일전에서 공을 빼앗긴 후 죽어라 달려 끝까지 볼을 경합하는 박지성은 아름다운 선수로 그라운드에 새겨졌지만 공을 빼앗긴 후 따라 달리는 것이 아니라 뜬금없이 헤어스타일을 다듬기 위해 머리를 매만지던 일본 축구선수는 아름답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숫제 추할 지경이었기에 일본 내에서도 엄청나게 질타 당했다는 것을 밝혀둔다.


    빨간 스쿨버스 (2009.06.18) : 배성환



    이렇게 배고픈 자와 배부른 자의 싸움만큼이나 승패가 뻔한 것이 없으며, 배부른 자의 여유 만만한 스포츠 경기는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니라 관객과 스포츠 자체에 대한 모욕이 된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는 예술가 또한 다를 바가 없으니 관객을 모독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땅히 배고픈 헝그리 정신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권투선수가 권투를, 축구선수가 축구를 함으로서 헝그리 정신을 표방한다면 일러스트레이터는 무엇을 통해 헝그리 정신을 구현해야 할까. 당연히 일러스트레이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일러스트레이션은 퍼포먼스를 동반하는 육체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는 것은 사실 축구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다. 그러니 답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에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모습을 찾아나가는 정신적인 여로, 즉 예술 행위에 있는 것이다.



    달을 낚다 (2008.09.29) : 배성환



    스포츠란 가끔 삶에 비견되기도 하는데, 둘을 상대적인 위치에 놓고 대조하던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던 어떻든 결론은 대개 '비슷하다'는 것에 맞추어지기 쉽다. 그리고 삶이 예술과 다를 바 없다면, 예술은 자연스럽게 스포츠에도 비교될 수 있는 행위가 된다.

    그렇게 빗대어 말하자면, 집에서 쫓겨나 떠돌던 만화가 배성환은 이제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예술 게임을 시작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더미런 : 배성환




    그는 만화계에서 살아가던 사람으로, 모 작가의 히트작 배경이나 펜 터치를 홀로 도맡던 고참 문하생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자기 이름으로 잡지에 연재를 진행하며 단행본 만화책을 다수 출간했던 명실상부 프로 만화가였다.

    그러나 만화시장의 붕괴 과정에서 거처를 잃고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그의 처지를 비추어 볼 때, 그 역시 붕괴한 만화시장에서의 자력생활이 어려웠던 대다수의 신진작가들과 신세가 엇비슷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시장을 만들어낼 정도의 지명도와 실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그만 그러한 것은 아니어서, 실제로 만화시장의 붕괴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작가는 상위 0.01%에 해당하는 작가들이 대다수였다.

    중간에서 상위 수준에 랭크되어 있던 다른 신진 작가층. 즉 열혈강호의 양재현, 어쩐지 좋은...저녁의 이명진 수준으로 팬층을 확보하고 있던 대다수의 기대주들마저 졸지에 입지를 잃어버린 실향민이 되어 게임시장이나 미국, 일본, 그리고 일러스트 등 다른 시장으로의 진출 아닌 전향을 강요당해야만 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한 일이다.

    배성환은 게임시장으로 진출했던 중견작가들과는 달리 일러스트레이션 시장으로 방향을 잡아 호구지책을 구하길 원했으나 기실 처음 무렵에는 그것조차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공방시스템을 차용하여 작업량으로 승부하면서 일러스트레이션의 상업예술을 일개 상업수단으로 전락시키던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그는 홀로 작업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처음 제작했던 학습지의 샘플은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데, 만화의 그림자에서 탈피하지 못함으로서 아직까지 남아있던 소년 챔프 연재만화 식의 방향을 보여준다. 그가 중간 모색기로서 어떠한 그림을 그렸는지는 전체를 알 길 없으나, 여러 가지 방향을 모색하며 길을 찾았음을 보여주는 것은 그의 작품 '빨간 스쿨버스'부터이다.



    학습만화 샘플 (Page 2005.09) : 배성환



    기존의 더미런과 같은 만화식의 작화풍에서 빨간 스쿨버스 식의 유아적 화풍으로의 파격적인 전환은 그에게 일차적인 호구지책을 해결해 주었다. 길바닥에 내몰린 채 밥값도 제대로 벌지 못하던 가난뱅이 작가에서 비록 기본적인 가격일망정 출판사와 관객의 호응을 얻어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호응을 바탕으로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일러스트 작업제의를 수주 받으며 여유를 찾아내었고, 그렇게 얻어낸 값진 여유를 방탕하게 탕진하는 대신 보다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데. 즉 자신의 개인작품을 제작하는데 투자하기 시작했다.



    고래의 여행(2010.03.30) : 배성환



    물론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작가의 쓴 맛을 보았던 사람이 다시 외면당할 지도 모를 모험을 하기란 쉽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속칭 '먹혀들었던' 기존의 빨간 스쿨버스적 방식과 그 연장선에 해당하는 '고래의 여행' 식으로 개인작업을 진행하려 들었던 것은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어딘지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자마자 그야말로 홰까닥 바꿔버리는 모험을 강행했다. 모든 일러스트레이터를 기준 삼을 때는 별 것 아닐 지도 모르지만, 이는 배성환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일단 현시점까지는 성공적이며, 진행 중이다. 아직 스타일로서 완전하게 정착된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만족스러운 작가적 고민 중 하나가 바로 그의 작품인 '투우사와 소'이기 때문이다.



    투우사와 소(2010.03.03) : 배성환



    이 작품에서 배성환이 채용한 '등을 돌리고 선 투우사'의 구도는 이중적인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등을 돌리고 선 주인공의 구도는 적지 않은 영화 포스터에서도 즐겨 사용하는 구도로, 등을 돌린 인물의 전면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 어딘가로의 통로거나 출구일 경우는 떠나감과 여운을 나타내고 무언가를 나타내는 물질의 경우 목전에 다가오는 위협과 그에 대한 대처를 나타낸다.

    배성환은 만화시장이 무너지면서 내몰렸던 전직 만화가 출신으로,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그림을 그려본 자의 쓴 맛을 어느 누구만큼이라도 여실히 본 작가 중 한명이니 그의 입장에서라면 위협의 대상으로서 다른 것은 굳이 생각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흥분한 소가 상징하는 것은 십중팔구 현실, 즉 세파일 테니까.

    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그 어떤 두려움도 보이지 않는다. 신물이 나도록 세파에 쓸렸을 것이 뻔한 배성환, 소와 마주한 투우사의 버티고 선 자세에서는 오로지 영광을 위해 맞서 싸울 투우사가 보여주는 신중한 마음가짐만이 느껴질 뿐 달아날 기색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돌진하는 소의 긴박감이 강조되어 화면 전체를 동세 속에 흘려내기 보다는 오히려 담담함마저 엿보이는 동세의 삭제. 그것이 마치 스틸 사진처럼 정적인 세계를 이루어 수실이 달린 어깨받이와 화려한 아라베스크가 수놓인 상의를 자연스럽게 살려주면서 뭉개지 않은 묘사로 이루어진 작품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저 화사한 아라베스크 무늬는 손에 들려있는 붉은 천보다 훨씬 더 주목할 만한 이 작품의 핵심적 부위가 되는데, 그것은 단순히 정밀 묘사가 새겨진 강조 부위라서가 아니라 이 무늬가 새겨진 상의가 바로 작가가 가장 드러내고 싶었던 목적, 즉 결코 물러서지 않을 거라는 용기와 함께 소를 무찌른 투우사에게 쏟아질 갈채의 과시 의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특징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기존의 빨간 버스나 고래의 여행처럼 유아 대상의 그림체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모색기에서 그려나갔던 과거 혼란상태의 묘사적인 그림들과 궤를 같이 한다는 사실.



    붉은 벽 앞의 소녀(2009.05.25) : 배성환



    쉽게 말해 빨간 스쿨버스, 고래의 여행 같은 방식, 속칭 말하는 '팔릴 수 있는 그림'으로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전업 초창기의 자신이 원하던 완성도. 즉 잘 그린 명화와 같은그림을 통해 스스로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그의 안에 꾸준히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 이 투우사는 크레파스로 그어진 선을 가지고 유아틱한 느낌의 선을 통해 그려져 그의 프로필 작품 가운데 하나 정도로서 사용되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확신시켜 주는 작품이 이후에 하나 더 그려졌는데, 그게 바로 투우사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플라멩코이다



    플라멩코 (2010.05.22) : 배성환



    강렬하게 돌진하듯 너울거리는 빨간 치맛자락, 얼굴을 가린 손과 그 뒤에서 폭발하는 댄서의 강렬한 포스는 작가적 허영심과 과시욕의 선포나 다름없다. 이건 창피하다거나 그런 류의 문제가 아니다. 과시욕과 허영심 또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질 수밖에 없고, 또한 품고 있어야 마땅한 인간의 감정 가운데 하나이기에 그러하다.

    배성환이 허세에 정신이 팔렸다는 말이 아니라, 누구나 감추려 드는 그런 감정마저도 자신의 모습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확실하게 찾아내어 묘사해 낼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냉철하게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여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가감없이 묘사함으로서 공감을 넘어 감동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예술가들이 하는 일이다.

    혹시 그냥 그려보았던 우연이 아니었을까? 그가 처음 투우사만 그렇게 그려냈다면 우연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뒤이어 그려진 플라멩코는 그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로써 그는 커밍아웃을 한 셈이 되었다.

    나는 작가 배성환이다.

    그가 그러한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가 드디어 예술가로서 여정의 한 발을 비로소 내딛었다는 것을 말하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작가적인 각성. 즉 예술가가 되기 위한 발걸음을 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분명히 이 두 작품은 아직 시장에서 각광받기에는 어딘가 아귀가 하나 빠져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업은 진행 중이며, 충분히 버리지 못한 만화적 데생의 흔적은 그의 개인작업을 통한 자아 찾기 여정이 여전히 갈 길 멀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직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자기 스타일을 찾아 저 위에 덧입히지 않고 있지만 그것이 그가 고의적으로 무언가를 더 찾아보기 위해 착수하지 않은 작업인지 아니면 단지 역부족이라서 그런 상황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짚어낸 자신의 모습 가운데 중요한 부분 한 가지를 그림에 드러내는 법을 잡아낸 이 시점에서 그것들은 그리 급한 것이 아니다.

    현재 생활을 지탱해 주는 빨간 스쿨버스 식의 유아 일러스트는 대중의 유행이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지속적으로 그의 생활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것이고, 그 기간 동안 배성환은 최대한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면서 그와 동시에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스타일을 찾아내어 덧입히기만 하면 되니까.

    그 결과는? 경솔함을 무릅쓰고 살짝 예측해 본다면 감히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배성환'의 컨셉 아닌 컨셉, 즉 작가만의 고유한 모습을 덧입은 채 욕망의 매력을 폭발시킬 플라멩코 댄서.

    자신 만의 고유한 모습 위에 다양한 스타일을 덧입힘으로서 수많은 얼굴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대다수 일류급 일러스트레이터의 고유한 작풍이 가지는 내면이기에, 나는 그가 이러한 자기 인식과 그에 따르는 확신의 획득 시도, 다시 말해 항상 진실에 배고픈 헝그리 정신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그를 일러스트레이터 배성환, 혹은 작가 배성환으로 칭해 줄 수 있다.

    납득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저버리고 진실한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는 은근한 고집 불통의 작가 배성환은 스스로 고생해서 찾아낸 자신의 모습에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스타일마저 덧입혀 120%의 발광효과를 달성하리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간 그는, 그때에서야말로 진실로 과시할 수 있을 만한 무언가를 찾아내어 우리에게 진짜배기 공감과 감동을 전해줄 헝그리 아티스트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일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소묘 연습과 비례, 훌륭한 연출과 스토리 구상에 골몰하는 대신, 혹은 병행하며 평생을 연습해온 것들이기도 하다.

    만화가 배성환이 일러스트레이터 배성환으로 변신하기 위해 바꾼 것은 결론적으로 머리에 들어있는 발상의 작동방식 뿐. 소묘를 버린 것도 아니고, 자존심을 꺾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스스로를 드러냈을 따름으로, 그것만으로도 그는 어엿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지 않은가.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란 말은 로마가 잘 났으니 정체성 자체를 로마인으로 바꾸란 소리가 아니라, 집 떠나온 여행객이 로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일 따름이다. 게다가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오히려 집을 잃어버린 만화가들에게는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만화가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의 변신 참고서 5


    '만화산업'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였을까. 난 그렇게 기억한다. 정부의 예산지원책을 등에 업고 막대한 세금을 투자받기 위해 그러한 용어를 급조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욕심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거기에 대한 뚜렷한 통찰 없이 일단 돈부터 퍼다 바르고 보는 땜빵 덧대기식의 지원책은 아무리 잘 봐 주려 해도 혈세의 낭비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문화의 한 장르를 문화 그 자체가 아닌 하나의 소규모 돈벌이 아이템으로만 간주하려 들었던 그 막무가내 지원책은 유사 이래 최고의 졸작 애니메이션으로 지칭되는 '블루시걸'을 남겨 역사에 남을 개망신을 뒤집어썼지만, 그것 말고도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깊은 흉터를 남겼으니 그게 바로 대중의 인식 변화다.


    블루 시걸 (1994)
    서울 정도 600년 타임캡슐에 내장된 작품으로
    역사 속에서 빛나며 1994년의 몰지각을 증언할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만화는 예술이 아니라 산업의 일부분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그들은 대개 그 당시 만화산업이라는 단어를 눈만 뜨면 들어가며 자라왔고 살아갔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만화가 예술이 아닌 돈벌이용 산업이 되어버린 이유에 대해 그러한 사람들과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예술이란 뭔가 고상하고 대단한 것인데 만화는 전혀 고상하지도, 대단하지도 못하다는 편견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상함? 대단함? 글쎄... 내가 태어나기 이전 한참 이전부터 예술이 가지고 있던 고상함은 산산이 깨어져 있었다는 것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술은 더 이상 구름 위의 존재로서, 고상하기 짝이 없는 왕후장상들만 향유할 수 있는 귀족계층의 문화가 아닌데 말이다.

    전제정치의 몰락처럼 대중이 혁명을 통해 예술의 향유 가치를 끌어내린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구름 속에 파묻혀 고상한 그림을 그리는 대신 대중들과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삶, 그 자체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던 예술가 본인들의 악평과 외면을 무릅쓰는 자발적인 노력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막아서며 예술을 구름 속에서 끌어내리지 못하도록 방해했던 사람들은 우습게도 옛날부터 예술 감상을 전유해 왔던 기득권층이 아니라 전제정치를 끝장내면서 예술감상의 자격을 쟁취해 낸 대중들이었다는 사실.

    그들은 '뭔가 이해했기에 어딘지 고상한 척'을 하기 위해 끈질기게 예술의 대중화를 반대해 오면서 거창하지 않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 예컨대 렘브란트라거나 반 고흐, 세잔 등과 같은 작가들을 괴롭혀 왔지만 애초에 자의적인 욕심으로 인간의 본질을 바꾸려 드는 시도 따위가 가능할 리가 없다.

    마르셀 뒤샹의 샘은 그러한 인식에 대한 극단적인 비아냥이 되었다. 거장으로 추앙받던 사람이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은, 예술의 고상함을 떠들어대던 사람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며 비웃기 충분했던 것이다.

    예술이 아직도 고상해 보인다면, 이 샘의 물을 마셔 보시오.



    마르셀 뒤샹 : 샘



    이게 예술이 아니라고 우기기엔 그동안 자신들이 뒤샹에게 바쳤던 찬란한 언사가 무색하고, 예술이라고 인정하자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진퇴양난. 뒤샹이 샘을 통해 던졌던 도전적인 메세지는 그 정도로 극명했다.

    이 작품은 차양이 드리워진 채 전시회장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전시가 끝나자 파손되어 사라져 버리고 말았지만 뒤샹의 친구였던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 한 장은 이 엄청난 비웃음의 걸작을 후세에 남겨놓았고, 그 덕분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불세출의 작가가 당대 대중들의 인식에 던진 엄청난 비웃음을 보고 들으며 함께 당대의 몰지각을 비웃을 수 있다.

    예술가도 결국 대중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그 누군가가 금으로 된 붓을 든다고 해서 별안간 후광이 비치며 성인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작품이란 것이 개인의 표현으로서 스스로의 본질을 찾아가는 행위라면, 예술이란 결국 대중의 표현으로서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앤디 워홀 : 캠벨 수프 깡통




    앤디 워홀은 뒤샹보다 한 술 더 떴는데, 물처럼 돈을 쓰고 시간을 죽이는 천박한 졸부처럼 행동하면서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예술가란 아무리 잘 말해줘 봐야 돈 좀 벌었다고 거들먹거리기 좋아하는 꼴사나운 졸부에 불과할 뿐이라는 전위적 행위예술까지 곁들여 버리며 예술의 고상함을 조롱해 댔다.

    이렇게 노력하는 가운데 세월이 흘러가자 대중의 인식에 도전한 작가들의 시도는 기어코 성공을 거두고야 말았다. 예술이 이렇게 워홀의 깡통 찌라시로, 혹은 뒤샹의 남성용 소변기로 화하여 끈질기게 대중의 곁에 배치되면서 점차 예술이란 삶의 다른 말이고, 삶이란 곧 예술이라는 올바른 인식이 2차세계대전 이래 예술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뉴요커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스며들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순수미술가 이하(Lee Ha : 뉴욕 브루클린 거주 재미작가. 뉴욕 아트 컴페티션 2th, AVAC 4th, 2010.06.30 인사동 가가갤러리의 포스트 팝아트 개인전) 역시 그런 삶 속의 예술가들 한 복판에 서려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하 : 한겨레 신문, 한빛일보(1997-2001)



    이하는 1997년 무렵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겨레신문의 시사만화를 담당했던 만화가이자, 2002 월드컵 기념 애니메이션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애니메이터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당대의 세태만 달랑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 자체에 어필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뉴욕 브루클린의 포스트 모더니스트가 되어 있다.

    그는 왜 고달픈 순수미술로 전업했을까. 일반적인 잡지연재용 액션만화와는 달리, 신문만화는 그 주제가 제한적인 대신 용도와 시장이 확실히 보호받고 있기에 시장파괴의 대변동에서도 비교적 무풍지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안정적이라고는 해도 결국 비정규직에 불과한 신문사 소속 시사만화가의 자리에 불안을 느꼈을 지도 모르고, 그림을 제대로 못 그려 악평에 시달린 나머지 제 풀에 물러났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싶다면 그가 그려왔던 시사성 있는 카툰과 순수예술가가 되고 나서 그리기 시작한 작품의 주제를 비교한 이후에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상업예술과 순수예술을 가르는 수많은 차이점 가운데 주요한 차이점 가운데 하나로는 원작의 힘이 가지는 파워라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복제를 전제삼아 대중적인 전파를 주무기로 삼는 상업예술에 비해, 원작만이 가질 수 있는 무지막지한 흡입력을 중시하는 것이 순수예술이다.

    이하는 그림을 그린 후 그것을 천에 디지털 프린트하고 그것들을 다시 오려내어 내부에 솜을 넣고 꼼꼼히 바느질하여 완성시키는데, 그것은 원작을 보지 않을 경우 잘 느껴지지 않는 느낌이 된다.

    그림 속의 인물이나 사물들이 단순히 2차원의 평면이고자 하지 않고 3차원 현실 속의 입면이고자 하는 몸짓은 이렇게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큰 차이점 가운데 하나, 원작을 직접 만날 경우 느껴지는 무언가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하 : pretty soldier(2009,101.6×76.2cm)의 세부 확대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물리, 시각적 변화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직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의 바램 한 마디는 분명히 서려있는 사실임이 확실하다. 이러한 바램이 얼마나 컸는지, 그는 심지어 액자조차도 나무가 아니라 바느질된 작품의 일부로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 그렇게 2차원의 평면에서 뛰어나오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가 제작한 거의 모든 작품은 앤디 워홀의 실크 스크린 연작들을 연상시키는, 발색이 그리 좋지 못한 잉크로 마련되어 있다. 물론 밥을 굶었으면 굶었지 작품은 제대로 만드려 드는 사람들이 예술가들이니 그가 돈이 없어 저런 색상을 사용한 것일 리가 없다. 순전히 고의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하 : 백설공주



    그것은 예술이 더 이상 구름 속을 거니는 신선노름이 아니라는 일차적인 포고나 다름없다. 어린아이들이나 좋아할 것 같은 색채 대비를 통하여, 장난스러운 테마와 3등신에 가까운 만화적 인물들의 반신상을 통하여 그는 예술을 일반 대중의 곁으로 끌어내리고 예술이란 곧 당신들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흔히 보는 모습들의 표현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그 바램이 강렬하기에 그의 인물들은 2차원에 머물지 못하는 것이고, 그가 선택한 소재들이 죄다 우스운 모습의 3등신 인물들이거나 그다지 효용이 좋지 못한 발색의 잉크로 표현되었다. 그들이 입을 모아 2차원에서 달려나오면서 말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이하가 가진 하나의 감성이자 간원의 정체이자, 시사성을 버리고서까지 순수미술로 달려간 하나의 동기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그럴 지도 모른다. 명절의 꼬까옷과 비슷한 느낌, 알록달록한 색상은 어린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상이다. 그는 어린아이에게 예술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뭐든지 어릴 때부터 보아오다 보면 그것이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은 뇌리를 파고든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들에게 이하가 말해 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말해 주고 싶은 그 무엇, 그것이 이하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 메시지이자, 안정적인 신문사의 소속을 포기하고 고달픈 애니메이터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가 다시 순수예술가로 전업시킨 동기이기도 하다. 색상 선택이나, 예술의 친밀함을 위한 설계적 구성들은 죄다 이 대주제를 위한 보조적 수단에 불과하다.



    이하 : 슈퍼맨



    이하가 자신의 작품 제작에 선택한 색상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그는 예술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믿는 뉴에이지 아티스트이고, 그 자신이 스스로 포스트 팝아트를 말하며 예술에 대한 편견을 조롱하는 작가란 것을 상기한다면, 대중 가운데 하나일 뿐인 인간 이하가 가지는 감성 역시 지상을 순식간에 제패할 정도로 대단한 것일 리가 없다.

    행복의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듯이, 어린 아이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 정도의 아주 간단한 것이야말로 그에게 시사성을 버리게 만든 대신 인간성에 대한 부름을 주었을 테니까 말이다.

    팔짱을 풀고 바라보면 흑인 마릴린 먼로와 흑인 슈퍼맨, 대립하는 백인과 유색인종의 사이에서 그들은 하나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살육의 병기인 기관총 앞을 날아다니는 나비들. 기독교의 상징인 목자의 옷을 입고 평화로운 웃음을 짓고 있는 마호메트.



    이하 : 마호메트



    보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현대 세태의 단편들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른이 보기에 슬그머니 찔리는 느낌들인 현재 진행형의 갈등 구조, 즉 백인의 아이콘인 백설공주에 유색인종이 대비됨으로서 흑백의 인종갈등이니 중동 사태니 하는 상황을 제거하고 '그냥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다면 이하의 묵언(默言)은 극도로 명료해 진다.

    어때? 너희들도 평화롭게 살고 싶지?

    마르셀 뒤샹이, 앤디 워홀이 예술작품을 대중의 눈높이로 끌어내려 결국 팝 아트를 세상에 정착시킨 이래 더 이상 현대 예술에 고상하고 거창한 의미 부여의 멍에를 지울 필요는 사라졌다. 굳이 고상한 품격을 부여하려는 성인 대중의 인식 때문에 작가들은 종종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메세지를 끌어내려 버리는데, 공장의 대량생산품인 남성용 소변기나 누가 찍어 내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판화 캠벨 수프 깡통에서 보듯이 사실 예술이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아직 팔짱을 낄 줄 모르는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미술관에 오게 되면 누구나 그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그 아이가 말하는 것, 그것이 벽에 걸린 이하의 그림이 내뿜고 있는 진정한 메시지일 테니까.


    *


    서로 다른 두 개체를 합일시킴으로서 대비되는 효과를 나타내어 메시지를 충격적으로 전달하는 그의 작화 방식은 신문의 카툰에서 사용되는 시사만화에 광범위하게 전용되는 다섯가지 테크닉(대비. 과장. 비틀기. 제거. 비유)에 선을 맞대고 있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거다. 이하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유력한 수단, 즉 시사만화에서 단련한 풍자의 능력을 예술에 덧대고 있기 때문이다.

    메시지를 단 한 컷으로 명료하게 발신할 수 있는 매체는 사실상 시사만화를 따라갈 매체가 드물고, 불쾌하지 않게 모든 계층에 확실히 전달할 수 있는 매체는 다름 아닌 카툰 아니던가.



    이하 : AK - 47



    카툰은 설명이 필요 없다. 어른이 보던 아이가 보던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메시지를 집어넣은 것은 작가 이하지만, 마음껏 뛰놀며 부모를 보채다 고개를 돌려 흘끔 그림을 바라보고 웃어댈 어린아이가 팔짱끼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는 척' 바라볼 부모보다 훨씬 이하의 묵언을 단번에 간파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것은 말 그대로 '순수한 예술'이다.

    이하는 평화에 대한 갈구를 어린아이의 가슴 속에 집어넣고 싶었고, 그들을 위한 예술을 제작했다. 그게 작가 이하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예술 활동의 목적이자, 신문의 시사만화가를 포기하게 만든 동기이자, 궁극적으로 달성하고 싶은 꿈일 것이다.


    *


    이하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만화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은 예술의 본류에 쉽사리 적용될 수 있다. 그것은 만화라는 매체의 태생 자체가 회화에서 변용된 것이기에 그러한 것인데, 이것은 상업예술 또한 하나의 예술이기에 예외가 될 수 없다.

    이하가 순수예술로 진로를 전환하기 위해 바꾼 것은 거의 없다. 바느질? 색채? 그것들은 하나의 수단일 뿐, 그가 바꾼 것의 본류가 아니다. 전환한 것은 단 하나. 발상뿐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메시지를 그려내는 것이 시사만화가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라면, 순수 예술가는 사회가 요구하는 주제 대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주제를 그려낼 뿐이다.

    결국 모든 재출발의 출발선은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이다.



    내가 이하를 알게 된 것은 전시회를 통해서라거나, 무슨 거창한 경로를 통해서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인터넷에서 흔히 말하는 '찌질 사이트'에 뉴욕 예술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거기서 그의 글을 발견한 나는 그가 남긴 메일 주소에 대고 편지 한 통을 발신했을 뿐이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소용돌이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몸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게 전부였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꼴사나운 거들먹거림과는 담을 쌓아야 한다.




    만화가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의 변신 참고서 6


    아마 대략 200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박지성 선수가 공을 차는 모습을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한국 나이키에서 박지성 선수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던 일이 있었더랬다.

    3D 애니메이션이야 텔레비전에서 나이키 광고할 때마다 틀어줬으니 많이 보았을 터이지만, 그 애니메이션의 컨셉 아티스트가 그린 그래픽 노블(이라고 불리던 만화작품)은 본 사람은 생각처럼 많지 않을 것이다.

    웬만한 유럽의 정상급 만화와 비교해도 절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상당한 퀄리티를 가진 그 작품을 보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불사조의 전설 : 일러스트레이터 잠산



    이 작품의 작가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왜 만화를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의뢰했을까. 그냥 봐도 결코 적다고는 말할 수 없는 보수, 예산만 억대에 가깝게 책정되었을 것이 뻔한 이 작품, 왜 그 광고 계약이 만화가에게 의뢰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하필 일러스트레이션인가.


    *


    월간 아동만화잡지 보물섬이라고 하면 어린 시절을 1980년대에 흘려보낸 많은 이들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추억 속의 아이템이다. 하지만 이 월간 잡지의 80년대 어느 7월호에 당시 국내 최고의 현직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렸다는 카피를 달고 납량특집 공포만화가 실린 적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지 못할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초지일관 재미가 없었기 때문에 이내 지면과 뇌리 속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백...뭐라는 작가였었나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수십 년 전의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건 만화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그림들의 나열이었다.

    각 컷의 퀄리티는 훌륭했지만 대단찮은 사건 연출에 시큰둥한 스토리와 함께 컷의 강약이 전혀 없는 북 일러스트 식의, 만화로서는 아주 수준 이하의 작품이었던 거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당시 한없이 어렸던 내가 그것을 기억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 세상엔 이렇게 재미없는 만화도 있구나!

    아무리 수준이 어떻든 간에 결국 재미없는 만화는 갈 곳이 뻔하다. 놀라운 펜선의 퀄리티와 함께 현직 일러스트레이터의 공포만화작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충격적으로 등장했지만 결과는 대 참패였다.

    그게 그 당시 활동하던 일러스트레이터의 한계였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렇더라도 그 시도 자체가 꽤 바람직한 도전이었다는 점에서는 그지없이 아쉬운 일이다.

    그때 그 시도가 성공했다면 지금과 같은 만화시장의 괴멸적 파괴는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 여파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장르가 약간 다르다 해도 결국 초록은 동색인 법.

    그림을 그려 감동을 추구한다는 본질에서 볼 때 만화나 일러스트나 결국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에서 목적을 추구한다는 사실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핵심적인 요소만 충족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일러스트레이터도 만화를 그릴 수 있고, 마찬가지로 만화가도 훌륭한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릴 수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오토모 가쯔히로의 아키라, 테츠오에 대한 오마쥬 일러스트 : Moebius GIR



    어쩌다보니 세월이 흘러 20년 후, 서기 2000년대가 되자 입장과 상황이 바뀌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다 참패했던 만화시장은 붕괴해 내렸고 만화가들은 사방에서 타 장르로의 진입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상태다.

    하지만 많은 만화가들이 상황에 굴하지 않고 꿈을 간직한 채 타 장르에서 무언가를 차용하여 무너진 한국 만화를 되살리려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는 것도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보면 그들이 진출한 타 분야의 대표적 장르가 바로 일러스트레이션 계열이다. 그들이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무언가를 차용하여 만화를 그릴 수 있다면 그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있는 전/현직 만화가들은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무엇을 어떻게 얻어내어 앞일을 모색해야 할까.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무언가를 얻어내어 성공한 만화작가가 있다면, 그의 예를 살펴 어떤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는가?

    답은 예스. 그런 사람이 있다.



    뫼비우스 질 원작의 만화 '블루베리'와 그 영화판.
    뱅상 카셀 주연, 얀 쿠넹 감독(2004)




    지구 반대편으로 잠시 눈을 돌려보면 꽤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중에 장 앙리 가스통 지로(Jean Henry Gaston Giraud)라는 작가가 있는데, 풀네임보다는 필명이 훨씬 유명한 사람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반드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름이 그의 것, 바로 뫼비우스 질(Moebius GIR : 1938~)이다.

    그는 몇 년 전 개봉했던 뱅상 카셀 주연의 영화「블루베리(2004년)」의 원작 만화가이며, 일러스트레이터로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꽤나 친밀한 관계를 맺어 그가 집필한 여러 편의 소설에 삽화를 그려주었다.

    SF 판타지를 주로 그리는만큼 영화 제5원소의 메카닉 디자인으로 상징되는 유럽풍 메카니즘 디자인 구현에도 참여하였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엔키 빌랄(Enki Bilal)의 작품 내에서 펼쳐지는 미래적 메카닉 디자인 세계는 뫼비우스가 일반화시켜버린 궤도의 아류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좌 : 뫼비우스의 베니스 일러스트 / 우 : 엔키빌랄의 공간도시 일러스트



    뫼비우스의 제5원소 컨셉 디자인과 엔키 빌랄의 일러스트



    뫼비우스의 세계는 복잡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쓰모토 레이지를 위시한 일본 만화가들처럼 나름의 세계관을 연대기를 짜서 가지를 뻗어가며 억지춘향 식으로 정립해 둔 것은 아니다. 어떤 인위적인 설정으로 시공간을 비틀어 맞춘 억지 구성이 아니라, 그 자신 특유의 디자인적 감각으로 확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감각은 기본적으로 작가 자신의 고유한 성격에 작가적 깨달음을 덧대어 만들어진 것으로 상당수가 기상천외한 방식의 발상으로 인하여 두드러지며 나이를 먹어갈 수록 원숙해 지며 변화하는 그 자신의 화풍이나 스타일같은 외피에 정체하지 않고 함께 변화하며 어우러진다.

    쉽게 말해 젊은 시절의 작품과 나이를 먹은 후의 작품들이 그 스타일이나 펜 놀림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둘 다 누가 봐도 그의 작품임을 알아볼 수 있는 방식이라는 건데, 뫼비우스가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전 그렸던 그림과 일러스트에서 무언가를 얻은 후 그리는 방식의 차이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감각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뫼비우스 역시 여타 만화가들처럼 만화공방의 문하생으로 출발했는데, 지제의 화실에서 코로나도의 길(La route de Coronado: 지제의 11번째 제리 스프링 시리즈) 따위 흔해터진 작품의 펜 터치를 하며 지내다가 한 프리랜서 스토리작가를 만나게 되면서 인생역전을 경험하게 되었다.

    유럽의 프리랜서 스토리작가는 만화 편집자이자, 일러스트레이션 편집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블루베리 시리즈의 첫앨범, 나바호 요새



    사실 우리끼리 얘기지만 사실 톡 까놓고 말해서 초창기 블루베리 시절까지만 해도 뫼비우스의 그림체는 답답하고 흔해터진 구닥다리 그림체가 맞다.

    하지만 그가 비교적 빠른 시간에 전환점을 마련하여 히트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환상적일 정도로 잘 짜여진 쟝 미쉘 샤리에(=스토리작가)의 스토리와 함께 점점 변화해 나갔던 그림체 덕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이 시기에 미칠 듯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시작하여 아직까지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분명 무언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뫼비우스 질(쟝 지로)의 일러스트와 영화/만화 경력

    만화 Blueberry (29 volumes, English translation, 1965-)
    일러스트 Contes de terreurs de Robert Bloch, volume n°12, 1974
    일러스트 Pochette de disque L’Avenir (ou : Futur-Fiction-Fantastique) de Guy Beart, 1977
    영화 Alien (1979) 
    만화 Jim Cutlass (7 volumes, 1979–1999)

    영화 The Time Masters (1982)Tron (1982)
    일러스트 Venise celeste, Casterman, 1984
    일러스트 Starwatcher, Aedena, 1986
    만화 Le Cristal Majeur (3 volumes, 1986–1990) Dargaud
    영화 Masters of the Universe (1987)
    일러스트 Made in L.A., Casterman, 1988영화 Willow (1988)
    영화 The Abyss (1989)

    일러스트 Chaos, Les Humanoides Associes, 1991
    일러스트 Chroniques metalliques, Les Humanoides Associes, 1992
    일러스트 Mœbius et le Reve, Casterman, 1992
    만화 Virtual Meltdown, 1993
    영화 The Jodorowsky Constellation, 1994

    일러스트 Fusions, Casterman, 1995
    일러스트 Les Univers de Robert Sheckley, volume n°37 , 1995
    일러스트 L'Alchimiste de Paulo Coelho, editions Anne Carriere, 1995
    일러스트 Folles perspectives, Stardom, 1996영화 Little Nemo: Adventures in Slumberland (1997)
    영화 The Fifth Element (1997)
    일러스트 Jeu de cartes a collectionner Netrunner(1997)
    일러스트 Une jeunesse heureuse, Stardom, 1999
    일러스트 40 days dans le desert, Stardom, 1999영화 Mister Gir &Mike S. Blueberry (1999)

    만화 Marshall Blueberry (3 volumes, 2000)
    일러스트 2001 apres Jesus-Christ (texte de Jean-Luc Coudray), Stardom, 2000
    일러스트 Mystere Montrouge, Stardom, 2001 (port-folio)
    일러스트 Affiche de la redition DVD du film La Chevre de Francis Veber
    일러스트 Ballades de Francois Villon, edition Vertige Graphic
    일러스트 La Memoire de l’ame de Jean Jacques Launier, editions Anne Carriere
    일러스트 L'Arbre des possibles de Bernard Werber, edition Albin Michel, 2002
    영화 Fellini: I'm a Born Liar (2002) 
    일러스트 Mourir et voir Naples, Stardom, 2002 (port-folio)
    일러스트 Blueberry’s, Stardom, 2004 (port-folio + CD)
    영화 Blueberry (2004)

    영화 Thru the Moebius Strip (2005)
    일러스트 Les Jardins d’Eros, Stardom, 2005 (port-folio)
    일러스트 Eloge de la sieste de Bruno Comby
    일러스트 Le Papillon des etoiles de Bernard Werber, edition Albin Michel, 2006
    만화 XIII (volume 18, La Version irlandaise in 2007), artist

      ★ 여타 수상경력은 생략


    뫼비우스 질의 주요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본업은 만화가이지만, 스토리작가이자 영화와 게임 아트 디렉터이기도 하다. 그는 페이드 투 블랙이라는 컴퓨터 게임 등 몇 가지의 게임에 스토리와 컨셉 아트를 맡기도 했었고, 영화 블루베리를 제쳐놓고서라도 제5원소나 에일리언, 윌로우 등 익히 알려진 작품에 손을 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합산해 보면 그가 가장 많이 활동한 부분은 일러스트레이션이다. 그가 일러스트를 택한 것이다. 왜일까? 일러스트레이션의 무엇이 그를 끌어당겼기에?


    *


    다른 모든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일러스트레이션은 그 무엇보다도 감각적인 터치와 센스가 필요한 분야다. 만화작업 만큼이나 작업량이 산더미 같은 것도 아니고, 영화나 게임의 컨셉아트처럼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서 완성된 감각을 기준삼아 어떤 통일성 같은 것을 추구해야만 할 필요성도 적다.

    감각을 앞세운 단기적인 프로젝트로 진행하되 다작이 가능할 정도로 여유로운 분야. 그리고 그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감각의 단련과 다양한 스타일의 변화 가능성. 이것이 일러스트레이션이 다른 분야에 비하여 가질 수 있는 장점이다.

    따라서 확률적으로 추측하자면 그의 그림이 변해간 것은 산더미 같은 작업량에 치이기 일쑤인 만화 작업 속에서 단순히 소묘능력이 원숙해 지면서 변해간 것이라기보다는 작업량은 적더라도 한 컷 한 컷의 완성도가 중요한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얻어낸 동기와 여유를 이용하여 발전했음이 더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앨범을 29개나 발매시키며 장기작업을 진행했던 블루베리 시리즈만 해도 초창기 작품과 후반기 작품의 화풍이 상당히 변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 사이에 당시 진행하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을 끼워 대조하며 바라보면 얼추 수긍이 가능하다.



    블루베리의 묘사 변화과정:
    초창기 리튜어넌 블루베리 - 중후반기 블루베리 더스트



    초창기 블루베리ㅡ 얼굴 근육의 방향에 구애받으며 명암의 보조적 역할만을 수행하던 잔선들에 원숙미가 더해 가면서 점점 자유로워져 나중에는 강약에 구애받지 않고 뛰노는, 한마디로 잘못 그은 선이 존재할 수 없는 경지로까지 진입해 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중간이 너무 붕 떠 버린다. 갑자기 사람이 이렇게 바뀌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벼락이라도 맞은 거 아냐? 하지만 그림들을 굳이 만화에 한정하지 않고 일러스트까지 분야를 넓혀 대조해 보면 좀 이해가 쉬워진다.



    뫼비우스의 화풍 변화 과정



    점점 지나친 묘사가 사라지는 대신 컬러의 변화나 여백의 남김으로 묘사를 땜빵이라도 하듯이 쓱쓱 문질러 생략해 버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여백의 활용이라는 것은 사실상 텍스트가 들어갈 자리를 비워주어야 하는 일러스트레이션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지나칠 정도로 강렬한 묘사의 는 오히려 광고주가 삽입하는 텍스트의 가독성을 해치기 쉽다는 점에서 감각적인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은근히 기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속표지 일러스트 : 미래의 기억
    날로 먹기. 감각을 깨달아버린 일러스트레이터는 나중에 이런 짓도 하게 된다



    그의 화풍에서 진행되어간 변화는 많은 것이 '감각적으로 생략되어간'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션에서 텍스트를 집어넣기 위해 비워놓아야 했던 여백이 그의 만화에서는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어 남겨진 경우인데, 사실상 비워둠으로서 오히려 많은 것을 담아주는 이런 화풍의 변화는 단순한 원숙이 아니라 변화와 진화가 함께 일어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날로 먹기, 감각적인 터치 몇 개만을 사용한 20초 작화가 가능할 때까지 뫼비우스는 자신을 정체시키지 않고 꾸준히 변화시킬 수 있는 자극제로 일러스트를 이용했다.

    과거의 그는 수없이 많은 터치를 이용하여 독특한 질감과 털털한 멋으로 승부하는 그런 작가였지만,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진행하면서 익힌 감각을 이용하여 자신을 발전시킨 것이다.


    *


    뫼비우스가 자신의 감각을 다듬고 찾아내어 화풍의 변화를 꾀하는 매체로 이용한 일러스트레이션은 기본적으로 자신 내부를 탐색하여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고, 그를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작품에 나타내면서 스토리, 혹은 광고주의 요구를 충족시켜 상업적 이용가치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정의만 살펴보면 만화라고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한국만화를 그려오던 만화가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자신의 내면을 깊이 있게 탐색하여 대중의 기호를 넘어선 본질을 건드렸는가.

    만화를 구매하지 않고 다운받아 봄으로서 시장파괴에 앞장섰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십중팔구 빠지지 않는 소리가 바로 소장가치가 없는 저질 만화이기 때문에 그러했다는 자기변명의 억지다.

    그렇다면 소장가치를 인정받으면 될 일. 만화 앨범의 소장가치를 인정받는 유럽을 보면 만화가 하드커버의 양장본으로 출시되며, 저 위에 살짝 언급되었던 제리 스프링 시리즈의 코로나도의 길 같은 것은 그려진 지 반세기 가량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E-Bay나 FNAC에서 주문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도 무작정 양장본으로 출시하면 소장가치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가엾은 기대를 하면 곤란하다. 전후 상황에 대한 파악과 자성 없이 무작정 대중의 인식 바꾸기만 보채며 상황이 나아지기를 손 놓고 바라기만 하는 것은 감나무 아래에서 그저 입만 벌리고 있는 짓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어차피 만화가들은 스스로를 무고한 피해자라고 마냥 우길 수도 없는 노릇. 자신을 망친 책임은 결국 자신이 져야 하는 법 아니던가. 소장가치 제로의 저질 낙인은 사실상 스스로의 탐색으로 본질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외면하고 더 섹시하게, 더 귀엽게, 더 화끈하게 그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말초적인 욕구 충족의 첨병이 되기를 자처했던 작가들 자신이 스스로에게 찍어댄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일방적인 피해처럼 보여도 절대 일방적인 피해만은 아닌 것이 현재 출판만화시장에 감도는 암운의 정체이며, 이를 타파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부터 바꾸어야 인식의 변화 또한 따라오는 법이기도 하다.

    예술에는 모름지기 명작의 힘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근원을 건드리는 좋은 작품은 훼손되어 사라지지 않는 한 분명히 어떤 탄압을 받던 간에 언제고 그 진가를 드러낸다는 말이다. 작가적 내면 찾기와 감각 다듬기, 즉 작가주의에 충실해지면서 소장가치가 생겨난 만화는 자연스러운 자생력을 가지게 되고 어떤 방향으로든 충분한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키에서 유럽 시장을 노리고 제작했던 박지성의 불사조의 전설 만화를 엉뚱하게도 만화가가 아닌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의뢰하여 성공시킨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출판만화시장은 붕괴상태일지 몰라도 세계의 만화시장은 아직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다. 시장은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시장이 남아있다면 독자와 매체도, 그리고 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예술이 존재하는데 필요한 요소 가운데 부족한 것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요소, 즉 바람직한 작가의 존재뿐이다.

    다시 한 번 부흥하기 위해서는 만화의 퀄리티를 높이되, 그 열쇠를 우선 자신의 안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를 찾을 수 있는 열쇠는 수많은 작가들이 자아를 찾아 허우적거리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던 순수예술이나 일러스트레이션계에서 쉽사리 구할 수 있다.

    어설픈 화끈함이나 시원찮은 폭력과 섹스어필, 대중의 겉면을 감도는 유행 따위로 어필할 시기는 지나도 한참 지난 지금 2000년대에서 타 장르의 장점을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하지도, 거부하지 않는 마인드의 감각적인 작가가 있다면 바로 그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여 다른 만화가들에게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의 소장가치를 노리고 하드커버로 출시되었던 그래픽노블
    불사조의 전설 : 일러스트레이터 잠산

     


     



     

    illustwriter
    대남

    1998년 보르도 5대학 D.E.F.L.E
    2000년 파리 발라드 오디오 비쥬엘 상급 예술학교(ESRA-Paris Balade)
    2003년 파리 8대학 조형예술학과 Art Plastique, Universite Paris 8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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