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묻혀가는 과거의 동반자 박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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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임해영
  • 등록일 : 2015-06-05
  • 조회수 : 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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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묻혀가는 과거의 동반자 박철민 1


    어린 시절을 상징할 수 있는 물건이 무엇일까? 당연히 한두가지가 아니다. 어지간한 사람은 모두 가난했던 그 시절, 우리는 어렸다.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이던 그 시절, 전기히터가 아니라 장작이나 석탄난로로 난방을 하던 그 시절의 기억이라면 학교에서 신던 흰색 실내화가 담긴 신발주머니, 놋쇠로 만든 사각 도시락통 등이 떠오를 것이다.

    그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돌려 과거로 돌아가다 보면, 점점 기억의 색채가 옅어지고 화면이 흑백처럼 바뀌어 몇몇 특정적인 색상을 제외하고는 탈색되어 가기 시작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바로 '꿈'이기 때문이다.

    *

    꿈이라는 단어는 단지 수면 중에 취하는 일련의 영상, 소리, 생각, 감정 등의 느낌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희망사항이나 목표 등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기 때문에, 소년은 꿈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열심히 잠을 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인생의 목표와 희망을 언제나 잊지 말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 '꿈'이라는 것을 어느 사이엔가 슬금슬금 잃어가고 있다. 현대 사회 속에서 희망사항이나 목표 등을 잃을 수 있는 요인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대중들의 잃어버린 꿈을 찾아 돌려주기 위해 감성의 세계 속을 끝없이 방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술가들이다. 다음의 그림을 보자.



    꽃비 내리는 날 (2008.04.01) : 박철민



    본래대로라면 강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을 붉은 하늘이 탈색되어 노란색에 가까운 주황색을 보여주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이목마저 실루엣으로 처리되어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상황. 어울리지 않을만큼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었을 파란색 꽃마저도 변색이 진행되어 이미 맑은 꽃의 색으로는 어울리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왠지 아늑하다. 이 세계는 이미 우리가 잘 아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박철민의 그림은 기존에 보아오던 몽환 속의 세계와는 그 궤도를 살짝 달리한다. 이것은 오래된 교과서의 삽화와도 같이, 언젠가 우리가 맨 정신으로 반드시 한 번은 겪었음직하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만 군데군데 탈색되어버린 기억의 일부분에 자리한 그림들처럼 보인다.

    우리가 아늑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것이 바로 우리의 '좋았던 그 시절'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했던 시절. 즐거웠던 시절이 이 그림에 녹아있다. 작가가 이걸 그리는 이유는 물론 작가 자신이 이 그림을 그리면서 즐겁기 때문이 가장 크겠지만, 그야 어찌되었던 우리는 이 그림을 보고 위안을 얻는다.


    그래, 우리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어...


    하지만 과연 진짜 좋았을까? 그때가?

    *

    예술은 강하다. 이성적인 인식보다도 강하고, 모든 것을 묻어버리는 세월보다도 강한 것이 바로 예술이다. 그것이 발라주는 꿈의 물감은 어두운 시간마저도 아름답게 탈바꿈시킨다.

    그 당시의 현실은 결코 좋은 시절이 아니었다. 언제나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처럼, 저 시절 우리의 아버지들은 베트남으로 날아가 네이팜 지옥의 심장부를 헤메어야 했고, 삼청교육대를 오가며 인간개조를 당해야 했으며, 광주 시청에서 동포의 총칼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하지만 박철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것을 위로하고, 더 위로하기 위해 끝없이 과거 속을 헤메이고 있다.

    왜 그럴까? 굳이 안해도 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이 작가. 혹시 어딘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작가는 간단히 말해서 '좋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분류할 때에는 여러 가지 분류항목이 있지만, 자신만을 위한 예술과 전체를 위한 예술로 분류할 수도 있다. 자신만을 위한 예술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과거를 인질삼고 개인의 고통을 무기삼는다. 자신의 아픔을 타인에게 전이시키고 그를 통해 스스로의 아픔을 덜고자 안달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예술가들도 나름대로는 은유던 비유던 할 것 다 해 가면서 현실의 고발 어쩌고 주워섬기곤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발전의 과도기적인 측면에서만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다. 보통 경력 5-10년쯤 되면 스스로의 아픔을 무언가로 '승화'시켜야 하는 단계가 다가오는데, 자기 자신을 위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용기가 없으니 그걸 승화시켜 관객들에게 발전적인 메세지를 던질 생각은 포기하고 주구장창 도시의 외로움이니, 사회의 부조리니 어쩌니 하며 설레발치기 일쑤다. 아무리 잘 봐줘도 이런 사람들은 ‘작가’ 씩이나 되어 관객이나 독자에게 동정을 구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이니 접기 전에 한번 더 이야기하자. 개인의 아픔을 승화시켜 무언가를 이룩하고, 그로 인한 발전적인 메세지를 찾아 보인다는 것이 무작정 희망만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스스로의 처절한 심경을 고백하면서 부족한 점을 부르짖는 것 속에서 해결을 위한 대응책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건 완성이나 치유를 위한 갈구이므로 일단 발전적이라고 보아줄 수 있다는 식이다. 문제만 제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점을 고쳐달라고 조르는 이차적인 행위 자체가 무언가 발전적일 수 있는 메시지라는 뜻이다.

    맥빠진 고발 따위에 일일이 신경써 줄 만큼 사람들은 넉넉하지 못하다. 그러나 역동적인 갈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거기엔 충분히 진심이 서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만큼의 아름다움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신을 위한 예술을 넘어 타인을 위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 박철민은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그도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젊은 시절의 고생이라면 나름 섭섭찮게 해 봤을 것이다. 돈이 없어 배를 곯아보았을 것이며 그 시절부터 그림을 손대왔던 다른 모든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담뱃값이 없어 꽁초를 주워보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되었던 그는 스스로에게 가슴이 아팠고, 그로 인하여 행복을 찾아보고자 과거를 뒤져 올라갔다. 그가 닿은 곳이 바로 이곳. 1970년대의 시골언덕, 파란 꽃이 피는 나무 밑이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고생했던 사람들은 작가의 손을 잡고 같이 꽃비 내리는 강변을 거닐게 된다. 행복을 찾아서. 영원한 행복을 줄 수야 없지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조차 소중했던 당시. 2008년 4월1일. 박철민은 꽃비 내리는 날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힘드실텐데 여기서 잠시 쉬세요. 언제든 떠나셔도, 돌아오셔도 좋아요.
    난 엄마야랑 누나랑 같이 강변 나무 밑에 있을테니까.



    묻혀가는 과거의 동반자 박철민 2


    '좋았던 옛날'은 언제인가?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바로 1970년대라고 대답할 테다. 그 시절은 내가 어렸고, 나에게 그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특별히 부유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기억 저편으로 희미해져 낡아가기 시작하는 그 시절, 초등학생이 아닌 국민학생은 겨울이 오면 석탄난로 위에 놋쇠 도시락통을 올려놓았고, 운동장에 눈이 내려 쌓이면 점심시간을 기다리느라 수업을 귓등으로 흘려듣기 일쑤였다.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광주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그건 나와는 상관이 없는 세계. 즉 어른들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었고, 내가 가지고 있던 나의 세계. 즉 아이의 주관이 점거하는 세계에서의 분통터지는 일이란 상급생 형에게 딱지를 빼앗긴 일이 전부였었다.

    그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이 틀 때부터 서산에 해가 걸릴 때까지 쌍코피 터지도록 놀던 나. 대한민국 국민학교 2학년짜리의 수준은 겨우 그 정도였다. 물론 그게 나만 그랬다면 이 일을 이렇게 자랑처럼 내밀 리가 없다. 하지만 그건 모두에게 당연한 거였고, 사실이었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은 구김살이 없다. 삼촌이 베트남에 가서 사선을 넘겼던, 이모가 간호사로 독일 이민을 떠났던 해외여행이 마냥 부럽기만 할 뿐이다. 도시락을 못 싸와서 수돗물로 배를 채워도 마냥 즐거울 수 있는 유일한 인종이라면 자기 세계의 주권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감성의 독재자들인 애들 뿐. 세상이 어찌 돌아가던 내게 그 당시는 '좋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독재자도 사회 속에서 성장하고 자라며 서서히 철이라는 것이 들어갔다. 경험이라는 이름의 얼룩과 자잘한 상처들이 여기저기 훈장처럼 매달리게 되었고,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들어서면서 감성은 자리를 잃고 어린 아이의 전유물로 남아야 했다.

    그리고 끝까지 감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서까지도 정신 차리지 못한 자들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순간, 나를 포함한 우리는 그 '좋았던 시절'을 박탈당해 버린 거다.

    그러나 그렇게 추억 너머로 잊혀져 가던 시간들이 돌아왔다. 한 작가의 붓을 통해서.



    육촌형 (2007.04.10) : 박철민



    구불구불한 밭길을 한 아이가 걷고 있다. 단순한 그림 속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 그림에서 과거를 느끼고, 그 시절의 조용한 행복을 상기하게 된다. 다. 그것도 그냥 과거가 아니라 마치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이 그림을 보는 이들은 각자의 출생연대에 따라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 이 그림의 어디가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여 지나친 옛날이 아닌 '그냥 어린 시절'을 기억시킬까?

    나는 육촌형을 보며 1970년대 시골집을 연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1970년대 태생이라 그렇게 느낄 뿐이지, 1960년대 태생도 얼마든지 이 그림을 보며 어린 시절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면, 이 그림에는 60년대-80년대를 상기시키는 결정적인 문화적 아이콘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어느 과거에나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성에 대한 묘사가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먼저 아이의 옷. 형들에게 대충 물려입은, 엉성한 스웨터가 낮익다. 저렇게 촌스럽게 입은 옷은 요즘 볼 수 없지만 그 당시는 저게 일반적인 아동 유니폼이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찾아보면 과거의 아이콘은 얼마든지 더 나타난다.

    등에 메고 양손으로 끈을 지지한 후 걸어가는 자세는 부잣집 친구들처럼 나도 가지고 싶어 어머니께 땡깡부리던 전설의 쓰리쎄븐 가방일테고, 아무렇게나 시멘트 벽돌로 대충 쌓아올린 담벼락과 파란 기와(혹은 슬레이트) 지붕은 말할 것도 없다.

    헤어스타일도 익숙하다. 과거의 방랑자인 박철민의 그림 가운데 상당수의 작품에서는 이렇게 기계충을 잡느라 박박 밀어버린 후 아무렇게나 자라게 방임해 버린 헤어스타일이 등장하곤 하는데, 저것 역시 근 20년을 유지했던 가난한 우리들의 초상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그건 사실 소품적 장치에 불과하다. 작가 박철민은 과거의 기억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포착하여 화폭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가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관찰한 것, 바로 오랜 추억만이 지닐 수 있는 시공간 불명의 어두운 분위기다.

    그림자의 존재와 길이로 보아 아직 태양이 싱싱할 시간인데, 소년을 둘러싼 사위는 은근히 어둡다. 어둠 속에 잠긴 산이 마찬가지로 찌푸린 하늘 옆에서 소년을 굽어보고 있는데, 똑똑할 정도로 드러난 길 옆 풀더미와 밭고랑은 생생하기 짝이 없다. 도저히 시간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어 퇴색된 기억처럼, 산과 하늘은 색을 잃었어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부분은 오히려 적나라한 그 시간들.

    오래되어 낡아버린 과거는 어둑어둑하게 느끼게 되지만, 그것은 암흑 속으로 빨아들이는 끈적끈적한 어두움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밤에는 두 가지 상반되는 요소가 공존하는데, 그것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이자 동시에 모든 것을 평안하게 쉬게 만드는 안식의 시간이라는 점이다.

    이 밤. 즉 잠이라는 휴식상태를 통해 인간은 안식을 취하게 된다. 수면 1단계와 2단계는 본격적인 수면을 취하기 위한 준비단계로, 흔히 '비몽사몽' 내지는 '선잠'이라는 말로 표현하곤 하는데 이 단계에서 꾸는 꿈은 대개 컬러풀한 색상을 가지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있다.

    수면의 3단계,4단계. 즉 렘 수면상태에 도달한 두뇌는 본격적인 휴식과 함께 여기저기 아무데나 꽃아둔 기억들의 제자리 정리저장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 시기에 총체적인 기억의 재저장과 망각이 필요한 사항의 삭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랜 과거의 기억들이 튀어나오기 쉽다.

    이 과거의 기억들에는 강렬한 색상이 기억될 용량이 배당되어 있지 않으며, 실제로 상당부분의 색상이 망각 속에 사라져 있는 상황이기 쉽기 때문에 꿈이 완전한 흑백이 되거나 아니면 기본적인 색상보다 서너 단계씩 명도나 채도가 낮아져 출력되기 쉬운 것이다.

    작가 박철민이 스스로의 기억 속에서 포착한 어두움의 모습은 이 망각의 손길이다. 작가 스스로의 기억도 희미해져가는 망각 속에서 그는 지침없이 끝없이 과거를 열어나간다. 자신의 좋았던 시절을 묘사하는 작업이 삶의 여운에 지쳐가는 우리들에 대한 작은 위로가 되어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묻혀가는 과거의 동반자 박철민 3


    미국인의 '그때 그 시절'은 자유와 정의가 넘치는 한없이 밝은 시간이었고, 나부끼는 성조기의 기치 아래 전세계에 준동하는 악의 무리를 가차없이 쓸어버리는 심판의 시절로 기억되었던 반면 우리의 '그 시절'은 그렇지가 못했다.

    물론 찾아보면 우리도 즐거운 일들이야 나오긴 하겠지만 , 그런 개개인의 행복찾기는 보편적인 동질감을 중시하는 동양식 전체주의 코드에 맞지 않는다. 설령 억지로 몇 가지 찾을 수 있기야 할 지 몰라도, 그게 무엇이던 간에 파멸적이던 보릿고개를 넘기 위한 싸움에서 입었던 사람들의 상처를 덮어 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소소한 행복은 대부분 중요하지 않는 정보로 분류되어 개인의 뇌 속에서 망각 속에 반쯤 묻힌 채, 그저 삭제만을 기다리는 신세들이 되어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 과거 속을 향해 칼을 뽑아든 사람이 작가 박철민이다.



     자유작업 (2006.12.13) : 박철민



    과거를 꺼내어 다시 보여줌으로서 추억과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그려진 박철민의 그림에서 이 망각의 어두움은 지워버려야 하는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자유작업이라 이름지어진 이 그림에서 망각은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것은 집 안에 있는 소녀의 얼굴과 유리창을 가린채 우산을 타고 내려오며 늘어져 있는 검은 얼룩들이다.

    망각이야말로 박철민의 그림을 뒤덮고 있는 핵심이다. 화면에서 중요한 지점들을 절묘하게 가리고 있는 저 망각들은 도대체 지워지는 중일까 아니면 덮어가는 중일까. 작가는 진짜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아 그걸 이렇게 검은 얼룩으로 흩뿌린 것일까? 그걸 알아보려면 우선 이 그림 속에서 박철민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검은 기운은 소년의 우산마저 침투해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설령 저 소년이 작가의 자화상이라 한들 정작 박철민은 저기 있지 않다. 망각을 지우려는 자 스스로가 망각에 침해되어 있을 리가 없으니, 그림 가운데 유일하게 망각에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가 바로 작가의 눈이나 다름없는 것. 즉 제3자의 시선처럼 무심하게 바라보는 저 노란 줄무늬의 고양이야말로 바로 작가의 눈을 대리하는 존재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그렇다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우산 소년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저 집이 완전하게 망각에 묻혀버리지 않은 것은 오로지 작가의 의지 덕분이지만, 저 망각의 검은 얼룩은 그 시절의 이미지에 딱 못박혀 어떤 역동적인 동선을 보이고 있지 않다. 정작 그것을 설명해 주어야 하는 소년과 고양이의 시선 속에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는데, 왜냐하면 둘 다 단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물어보자. 도대체 왜일까. 작가는 감성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으로서, 원한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강력한 존재다. 그가 바란다면 어떤 망각도 그의 세계를 침해할 수 없고,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저 집안의 여학생과 함께 들판을 뛰어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단지 바라볼 뿐이다. 도대체 왜? 왜 저 소년은 우산을 휘둘러 집을 뒤덮는 어두움을 물리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관조만 하고 있을 따름일까.

    그것은, 작가가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덮으려 드는 망각이 모두 지워지고 진실이 청천백일하에 드러나는 순간, 작가는 자신의 작품으로 자기 자신을 비롯한 모든 현대인들에게 되찾아 주고자 했던 대한민국 60-80년대를 눈부시게 드러내야만 한다.

    하지만 정작 작가가 두려워하는 문제는 이 망각 지우기에 있는게 아니다. 진실과 행복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 법.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60-80년대를 관통했던 우리 과거는 사실 그리 행복한 시절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나아가 짐작하자면, 작가 자신의 과거 마저 그리 행복했다고 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를 일. 그러하기에 작가는 진실을 찾고 나면 행복이 달아나 버릴 지도 모른다는 이 즐겁지 않은 코미디에 직면해 있는 중이다.

    그림이란 작가의 분신이기에, 행복하지 않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행복할 수가 없다. 진지한 예술가가 자기의 행복하지 못한 작품에 환멸를 느낄 경우 할 수 있는 선택은 너무 뻔하다. 그리고 그것은 마땅히 두려워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박철민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 망각의 검은 얼룩은 존재가 명확해 진다. 박철민은 사실 똑똑히 기억하는 입장이지만 집의 벽과 여학생과 우산에 스스로 물리쳤던 망각을 덧발라 어둠 속으로 묻어버린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

    사실 이 진실에 대한 드러냄과 가림은 사실 오랜 기간동안 사용되어 왔던  예술가의 무기다. 굳이 외설과 예술의 차이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비슷한 맥락에서 박철민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다. 일부러 기억해 내려 하지 않고, 전체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행복의 끝자락만을 기억 너머에서 살짝 끄집어 내어 제시한 박철민은 사실 망각과 어두움을 드러냄과 가림의 수단으로 삼아 자유자재로 다루는 자다.

    하지만 보는 우리 관객이야 작가가 꺼내어 보여주는 행복만을 느끼며 꿈 속에 빠진다 하더라도, 막상 작가 자신은 누구보다 똑똑하게 당시를 기억해 내며 힘들어 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가 보여주는 행복은 스스로가 손대기 두려워 스스로 어둠 속에서 반쯤 묻어버린 당시 일상의 기억들 뿐. 작가는 그 시절의 일상에서 행복을 찾고 싶었겠지만, 정작 그 당시 전체를 똑똑히 드러내는 것은 두려워하여 오래된 꿈과 추억 속에 묻어버렸다.

    그러나 용기있는 예술가란 투사(鬪士)나 다름없는 법이다. 과거 속을 헤집어 해묵은 망각과 싸워가며 행복을 끄집어내야 하는 길을 작가로서의 삶의 목적으로 택한 입장이라면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한층 용기를 내어 망각을 지워내고 결과를 두려워하는 자신과 싸워 가며, 그 안에 서려있던 소중한 기억과 행복을 끄집어 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물론 쉬운 일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본래 투사란 남을 대신하여 싸우는 일을 업으로 삼는 투기장의 인생들. 관객의 대리자로서 싸우고, 보편적인 행복이나 쾌감을 끄집어 내는 것이 쉽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박철민이 선택한 길이자, 진지한 일러스트레이터가 걸어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illustwriter
    대남

    1998년 보르도 5대학 D.E.F.L.E
    2000년 파리 발라드 오디오 비쥬엘 상급 예술학교(ESRA-Paris Balade)
    2003년 파리 8대학 조형예술학과 Art Plastique, Universite Paris 8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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