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본가?
  • 2020-05-25
    581
  • 그림작가 김형준
  • 글작가 김 형준
  • 페이지 68
  • 발행일 2020-05-25
  • 작가후기
    바다를 뒤덮은 플라스틱. 꺼지지 않는 산불. 하늘을 가득 메운 미세먼지.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는 빙하. 폭주하는 사막화. 점점 더 빈번해지고 심각해져가는 바이러스의 역습... 이 모든 것들이 환경파괴로 인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재앙들입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어리석음의 댓 가는 점점 더 커지면서 빠르고 무서운 속도로 닥쳐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그 결과들만을 보고 근심하며 ‘환경보호’를 외치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것 만 으로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여전히 인간의 의지에 기대고 있는 ‘환경보호’라는 관점을 넘어 우리 안에 있는 더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고 바로잡아 야만 합니다.

    생명은 대자연 그 자체의 합작품입니다. 당연히 인간도 그 작품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그 자연의 대립자가 되었습니다. 현재 벌어지는 재앙 적 환경 파괴는 자연으로부터 분리되고 이탈한 채 홀로 생존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교만과, 자신을 자연 속에 또 다른 자연으로 여기는 무지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내리는 게 비다.” 라는 니체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무지의 비극적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어적 습관이 만든 착각이 일종의 믿음이 되어서 사실은 있지도 않은 ‘비’가 당연히 ‘내린 다’는 행위 또는 사태 이전에 실존하는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어의 자리에 비가 아니라 ‘인간’이 오게 되면 문제는 훨씬 복잡하고 심각해집니다.
    “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걷는 것이 나다.”라는 걸 인정해야 하니까요.
    사실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인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인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왜냐면 걷기 전에는 즉 ‘걷기’를 가능하게 하는 나의 내부와 외부의 수없이 많은 개체들의 협력이 있기 전에는 내가 없는 것이라는 걸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분리 된 ‘나’가 명확하고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 어려움 ’이 바로 인간의 언어적 착각이 만든 무지의 비극적 효과입니다.
    그래서 내가 걷고, 내가 먹고, 내가 잠자고, 내가 싸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되어버리고
    그로부터 나의 모든 행위는 나의 자유의지의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나로부터, 인간으로부터 바로 우리의 자유의지로부터 시작되게 됩니다.

    바로 이 원인에 대한 거대한 착각과 무지로부터 인간은 여타 자연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거의 무의식적 확신이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이 확신 속에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고 이탈되어, 이 세상 모든 것이 인간의 욕망에 봉사해야 한다는 인간 중심적 사고가 마치 자연의 법칙이라도 되는 양 믿고 따르는, 정말로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괴물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괴물의 무지와 교만이 자연을 돌이킬 수 없이 파괴하고 인간의 역사를 자연 파괴의 역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어쩌면 우리의 사유가 도달해야 하고 또 새롭게 시작되어야 할 터닝 포인트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원인을 이해하고 그 무지와 교만으로부터 돌아서야 합니다. ‘인간’이라는 거대한 착각으로부터 돌아서는 것, 어머니 자연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그리고 무한하고 영원한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표현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 말고는 이 파국을 막을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자연에는 끝없는 변화가 있을 뿐입니다.
    신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것도 아니고 인간이 그 신의 대리인 인 것도 아닙니다.
    오직 대자연 속의 만물이 마음을 합하여 생명을 만들고 끝없이 가꾸어 나가는 것뿐입니다.
    ‘환경보호’라는 말은 좋은 말이지만 어쩌면 그 말은 아직도 우리가 우리의 자유의지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무지하고 교만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고 보호해주는 대자연의 작은 목소리들에 겸손히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외부로부터 그리고 동시에 나의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그 목소리들로부터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인지 배우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나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서로 귀 기울여 듣는 그 관계들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관계들로부터 늘 새롭게 흘러나오는 질서를 겸손히 그리고 즐겁게 따라가는 것 그 것 뿐입니다. 그렇게 만물과 몸과 마음을 섞고 함께 춤추며 살아가는 것 그 것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우주의 춤 속에서 끝없이 생성되는 진정한 나를, 그리고 진정한 자유를 마침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책 작업을 하는 동안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건을 만났습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풍경이 일상이 되었고 과연 인류가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쩌면 우리가 다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우리 앞에 닥친 위기의 실체를 직시하고 그 원인을 사유해야 하는 적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죠. 페데믹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건 아마도 만물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위한 새로운 질문일 것입니다. 이 책은 우연히도 이렇게 새롭고 운명적인 사건의 체험 속에서 작업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의 존재와 자유가 어떻게 공존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면서 동시에 저 나름의 대답입니다.
    이 소박한 질문과 대답이 우리가 붙들고 의지하는 ‘인간’이라는 무지와 교만을 반성하고 돌이키는 일에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며 이 책을 지었습니다. 부디 이 책이 우리가 자연을 보호한다는 착각에서 깨어나 이미 그리고 항상 자연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우리는 오직 자연 속 에서만 아름답고 공존 속에서만 자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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